모든 생물에 대해서 폭력을 쓰지 말고, 모든 생물을 그 어느 것이나 괴롭히지 말며, 또한 좋지 않은 인연을 맺지 말라. 그러한 인연에서 근심이 생기는 줄 알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서로 사귄 사람에게는 사랑과 그리움이 생긴다. 사랑과 그리움에는 괴로움이 따르는 법 연정에서 근심 걱정이 생기는 것임을 알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친구를 동정한 나머지 마음이 거기에 얽매이게 되면
본래의 뜻을 잃는다. 가까이 사귀면 이런 우려가 있는 것을 알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자식이나 아내에 대한 애착은 마치 가지가 무성한 대나무가 서로 엉켜 있는 것과 같다. 죽순이 다른 것에 달라붙지 않도록,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숲속에서 묶여 있지 않는 사슴이 먹이를 찾아 여기 저기 다니듯이, 지혜로운 이는 독립과 자유를 찾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동반자들 속에 끼면 쉬거나 가거나 섰거나
또는 여행하는데에도 항상 간섭을 받게 된다.
남들이 원치 않는 독립과 자유를 찾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동반자들 속에 끼면 유희와 환락이 있다.
또 자녀들에 대한 애정은 아주 지극하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이 싫다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사방으로 돌아다니면서 남을 헤치려는 생각없이
무엇이나 얻은 것으로 만족하고
온갖 고난을 이겨 두려움 없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잎이 진 코빌나라 나무처럼
재가자의 표적을 없애버리고 집안의 굴레를 벗어나
용기있는 이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그대가 현명하고 일에 협조하고 예절바르고
총명한 동반자를 얻는다면 어떠한 난관도 극복하리니
기쁜 마음으로 생각을 가다듬고 그와 함께 가라
그러나 만일 그대가 현명하고 일에 협조하고 예절바르고
총명한 동반자를 얻지 못했다면
마치 왕이 정복했던 나라를 버리고 가듯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우리는 참으로 친구를 얻는 행복을 기린다.
자기보다 뛰어나거나 대등한 친구와는 가까이 지내야한다.
그러나 이런 친구를 만나지 못할때에는 허물을 짓지말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금세공이 잘 만들어낸 두개의 황금팔찌가
한 팔에서 서로 부딪치는 소리는 듣고
두 사람이 같이 있으면 잔소리와 말다툼이 일어나리라.
언젠가는 이런일이 있을 것을 미리살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욕망은 실로 그 빛깔이 곱고 감미로우며 우리를 즐겁게 한다. 그러나 한편 여러 가지 모양으로 우리 마음을 산산이 흐트러 놓는다.
욕망의 대상에는 이러한 근심 걱정이 있다는 것을 알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이것이 내게는 재앙이고 종기이고 화이며,
질병이고 화살이고 공포다.
이렇듯 모든 욕망의 대상에는
그와 같은 두려움이 있는 것을 알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추위와 더위,굶주림,갈증,바람,
그리고 뜨거운 햇볕과 쇠파리와 뱀, 이러한 모든 것을 이겨 내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마치 어깨가 떡 벌어진 얼룩코끼리가 그 무리를 떠나 마음대로 숲속을 거닐 듯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탐내지 말고 속이지 말며, 갈망하지 말고 남의 덕을 가리지도 말며, 혼탁과 미혹을 버리고, 세상의 온갖 애착에서 벗어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의롭지 못한 것을 보고
그릇되고 굽은 것에 사로잡힌 나쁜 벗을 멀리 하라. 탐욕에 빠져 게으른 사람을 가까이 하지 말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널리 배워 진리를 아는,고매하고 총명한 친구와 사귀라. 온갖 이로운 일을 알고 의혹을 떠나라, 세상의 유희나 오락이나 쾌락에 만족하지 말고
관심도 가지지 말라. 꾸밈없이 진실을 말하면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이것은 집착이구나. 이곳에는 즐거움도 상쾌한 맛도 적고 괴로움뿐이다. 이것은 고기를 낚는 낚시이구나. 이와 같이 깨닫고 현자(賢者)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물속의 고기가 그물을 찢듯이, 또는 불이 다 탄 곳에는 다시 불이 붙지 않듯이, 모든 번뇌의 매듭을 끊어 버리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눈을 아래로 두고 두리번 거리거나 헤매지 말고, 모든 감관(感官)을 억제하여 마음을 지키라 번뇌에 휩쓸리지 말고, 번뇌의 불에 타지도 말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잎이 져버린 파리차타 나무처럼
재가자의 모든 표적을 버리고
출가하여 가사를 걸치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여러가지 맛에 탐착하지 말고
욕구하지도 말며 남을 양육하지도 말라
문전마다 밥을 빌고 어느 집에도 집착하지 말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마음 속에 탐욕과 분노 우울과 들뜸
그리고 의심의 덮개를 벗기고
온갖 번뇌를 제거하여 의지하지 않으며
애욕의 허물을 끊어버리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전에 경험했던 즐거움과 괴로움을 내던져 버리고, 또 쾌락과 우수를 떨쳐 버리고 맑은 고요와 안식을 얻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최고의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 정진하고, 마음의 안이를 물리치고 수행에 게으르지 말며, 용맹정진하여 몸의 힘과 지혜의 힘을 갖추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홀로 앉아 선정(禪定)을 버리지 말고, 모든 일에 항상 이치와 법도에 맞도록 행동하며, 살아 가는데 있어서 무엇이 우환인지를 똑똑히 알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애착을 없애는 일에 게으르지 말고, 벙어리도 되지 말라,학문을 닦고 마음을 안정시켜 이치(理法)를 분명히 알며 자제하고 노력해서, 무소의 뿔 처럼 혼자서 가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 처럼 혼자서 가라.
이빨이 억세고 뭇짐승의 왕인 사자가 다른 짐승을 제압하듯이, 궁벽한 곳에 거처를 마련하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자비와 고요와 동정과 해탈과 기쁨을
적당한 때를 따라 익히고, 모든 세상(世上)을 저버림이 없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탐욕과 혐오와 헤매임을 버리고, 속박을 끊어 목숨을 잃어도 두려워 말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벗을 사귀고
또한 남에게 봉사한다.
오늘 당장의 이익을 생각하지 않는 그런 벗은 보기 드물다.
자신의 이익만을 아는 사람은 추하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불교 초기 경전중의 하나 숫타니파타 에서 (아마도)법정해설
--- 갑자기 생각나서 찾아봤다. 10여년쯤전에 영화로도 만들어진 소설 제목에 쓰여 제법 유행했던 말이었던것 같다. 그땐 누가 또 유행어 하나 만들어냈나 하고 생각하고는 관심주지 않고 있다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라는 문장에서 무소가 뭔지 궁금해서 코뿔소인것을 사전에서 찾고 코뿔소가 우직하게 걸어가는것을 상상하고 거기에 내 멋대로 이런저런 긍정적인 이미지를 덧붙여서 동경하면서 생각해왔던 한 문장이었다. 오늘 또 생각난김에 찾아보니 이런 명문일 줄이야. 해석을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고(코뿔소(외뿔소)의 뿔처럼 혼자서가라-라고 했으면 그렇게 유행하지 않았겠지?) 내가 생각했던것과 비슷한 내용의 글이라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Par les soirs bleus d'été, j'irai dans les sentiers, Picoté par les blés, fouler l'herbe menue : Rêveur, j'en sentirai la fraîcheur à mes pieds. Je laisserai le vent baigner ma tête nue.
Je ne parlerai pas, je ne penserai rien, Mais l'amour infini me montera dans l'âme ; Et j'irai loin, bien loin, comme un bohémien, Par la Nature, heureux- comme avec une femme.
말도 하지 않으리. 생각도 하지
않으리.그러나 내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사랑만이 솟아오르네.
나는 어디든지 멀리 떠나가리라, 마치 방랑자처럼. 자연과 더불어,─
연인을 데리고 가는 것처럼 가슴 벅차게.(미상)
take2 푸른 여름 저녁이 되면, 오솔길을 걸으리. 밀잎들에 찔리면서, 가느다란 풀밭을 밟으면서, 몽상가, 나는 내 발로 하여금 그 신선함을 느끼게 하리. 바람이 맨머리를 감싸도록 내버려 두리.
아무 말 없이, 아무 생각도 없이, 하지만 내 가슴에는 끝없는 사랑 피어오르리. 멀리, 더 멀리 나는 가리, 방랑자처럼, 여인과 함께 가듯 행복에 겨워서 자연 속으로(미상)
take3
여름날 푸른 저녁이면, 나는 들길을 걸어가리라 밀잎에 찔리고, 작은 풀들을 밟으며: 몽상가여, 나는 발밑으로 그 신선함을 느끼리라 바람이 내 맨머리를 씻기도록 하리라
나는 아무 말도 않으리,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리 그러나 무한한 사랑은 내 마음 속에 함께하리니(피어나리니) 나는 가리라, 멀리, 저 멀리, 집시처럼 여인과 함께 가듯 행복히, 자연 속으로.(미상)
take4 여름 야청빛 저녁이면 들길을 가리라,
밀잎에 찔리고, 잔풀을 밟으며.
하여 몽상가의 발밑으로 그 신선함 느끼리.
바람은 저절로 내 맨머리를 씻겨주겠지.
말도 않고, 생각도 않으리
그러나 한없는 사랑은 내 넋속에 피어오르리니,
나는 가리라, 멀리, 저 멀리, 보헤미안처럼,
계집애 데려가듯 행복하게, 자연 속으로.
(김현 역)
---------------- 랭보는 알면 알수록 "이런 천재!' 라는 말이 튀어나오게 한다. 언어의 장벽에 가로막힌게 분할정도로. 이건 그래도 알아먹을수 있는 축에 속한다. 내용이 말랑말랑하고 짧으니까. 프랑스어를 익히기 전에는 여러 번역판을 비교하면서 읽는수 밖에 없다.
예를들면 234가 좀 비슷하고 1번은 좀 읽기 편하게 번역했는데 나는 처음에는 1번 같은 번역으로 읽는것을 좋아한다. 뜻이 왜곡되는 경우도 많지만 전체적 감이 잘 잡히기 때문이다. 4번처럼 '야청빛' 같은걸 써서 번역해주면 어휘력 짧은 나같은 사람 곤란해진다. 밤같은푸른색이란건 알겠지만 첫걸음부터 걸리는 느낌이다. 검푸른빛이라고 하면 안되나? 계집애는 옛날사람이 번역해서 그렇다 치자. 보헤미안을 집시, 방랑자로 번역해놨는데 정확한 뜻을 살리자면 보헤미안처럼-이라고 하는게 맞겠지만 어쨋든 떠난댔으니 방랑자라는게 더 잘 녹아들어가는 느낌이다. 랭보가 보헤미안에 대한 특별한 감정이 있었나? 그럼 보헤미안이라고 하는게 더 좋을지도.
이런식이다. 내참 10년안에 불어공부 하고야 만다. 번역된 이상 이미 다른시에 가까워진다..어차피 완벽하게 전달되는 소통이란 없는거니까 뭐든 받아들이기 나름이긴 한데..이런 면에서 본다면 좋은 번역은 알아먹을수 있게 옮기면서도 원문의 왜곡을 최소화, 원저자의 의도를 충실히 전달해주는것. 그를 위한 최소한의 배경지식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양의 주석도 불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번역가님들 수고해주세요-
시를 천천히 소리내어 읽는 맛을 즐기지 못한다는것은 정말 아쉽다. 어학의 천재였다면 별로 공부도 안하고도 6개국어쯤은 간단히 했을텐데 말이지, 아주 약간의 재능밖에 없는 나로서는 매일 읽고쓰고듣는 수 밖에 없다. 그래도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고 있어 한자에 관해서는 유리한 입장에 있다는게 다행이라면 다행. 머릿수로만 따지자면 중국어나 영어지만...윽 갑자기 스페인에서 살다온 후배가 엄청 부러워졌다. 의욕만 불태우는 아침.
옛날의 배우는 자는 반드시 스승이 있으니, 스승이란 것은 도를 전하고 업을
주고 의혹을 푸는 때문이다. 사람은 나면서 이(도)를 아는 자가 아니면 누가 의혹이 없을 수 있으리오. 의혹이 있으면서 스승을
좇지 않는다면 그 의혹됨이 마침내 풀리지 않을 것이리라. 나의 앞에 (세상에) 나서 그 도를 들음이 진실로 나보다 먼저라면 나는
좇아서 이를 스승으로 삼고, 나의 뒤에 났더라도 그 도를 들음이 또한 나보다 먼저라면 나는 좇아서 이를 스승으로 삼는 것이니,
나는 도를 스승으로 삼는 것이라. 대저 어찌 그 나이가 나보다 먼저거나 뒤에 남을 가리리요. 이런 까닭으로 귀함도 없고 천함도
없으며, 어른도 없고 젊은이도 없고, 도의 있는 곳이 스승의 있는 곳이니라.
아아, 사도가 전하지 못함이 오래도다. 사람들이 의혹이 없기를 바라나
(이것은) 어렵도다. 옛 성인은 그가 사람에서 뛰어남이 멀건만 오히려 또한 스승을 좇아서 그에게 물었거늘, 지금의 여러 사람들은
그가 성인에서 뒤떨어짐이 또한 멀건만 그러나 스승에게 배우기를 부끄러워하니라. 이런 까닭으로 성인은 더욱 성스러워지고 어리석은
자는 더욱 어리석어지느니, 성인 성인된 까닭과 우인이 우인된 까닭이 그것이 모두 여기서 나온 것이 아니겠는가.
그 자식을 사랑하려는 스승을 가리어 이를 가르치고 그 몸에 있어서는 어떤
이를 스승으로 삼기를 부끄러워하니, 미혹하도다. 저 동자의 스승은 이에게 글을 가르쳐 주되 그 구두(句讀)를 익히는 것뿐이니,
내가 말하는 바 그 도를 전하고 그 의혹을 풀어 주는 것은 아니니라. 구두를 알지 못하는 것과 의혹을 풀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
혹은 스승을 두기도 하고 혹은 그렇지 않기도 하니, 작은 것은 배우면서 큰 것은 버리는 것이라 나는 그 밝음을 보지 못하겠도다.
무당, 의사, 악사, 백공의 사람들이 서로 스승으로 삼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거늘, 사대부의 족속은 , '스승이라' '제자니' 운운하면, 곧 무리로 모여서 이를 비웃고, 이(까닭)를 물으면 곧
말하기를, '저와 저는 나이가 서로 같고, 도가 서로 비슷하니, 지위가 낮으면 부끄러함에 족하고, 벼슬이 성하면 아첨에 가까운
것이라' 하니 아아, 사도가 회복되지 못할 것을 (가히) 알 수 있도다. 무당, 의사, 악사, 백공의 사람들을 군자는 상대도
하지 않거늘, 이제 그들의 지혜는 곧 도리어 (능히) (저 사람들에게) 미칠 수 없으니 그것은 (가히 ) 괴이하게 여길 만하지
않은가.
성인에게는 상사가 없도다. 공자는 담자, 장흥, 사양, 노담을 스승으로
삼으시니, 담자의 무리는 그들의 어짊이 공자에게 미치지 못함이라. 공자 말씀하시되, '세 사람이 가는 데에 곧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고 하시니, 이런 까닭으로 제자는 반드시 스승만 같지 못지 않으며, 스승은 반드시 제자보다 어질지는 아니하다.
도를 듣는 것이 선후가 있고 술업에는 전공이 있으니. 이와 같을 따름이니라.
이씨의 아들 반이 나이 열 일곱에, 고문을 좋아하여 육예와 경전을 모두
이것을 통습한지라 시속에 구애되지 않고 나에게 배우기를 청해 왔거늘 나는 그가 (능히) 고도를 실천할 수 있음을 가상히 여겨
(이) 사설을 지어서 (써) 그에게 주노라.
한유
중국 당(唐)나라의 문학자 ·사상가.
자 퇴지(退之). 시호 문공(文公). 회주(懷州) 수무현(修武縣:河南省)
출생. 792년 진사에 등과, 지방 절도사의 속관을 거쳐 803년 감찰어사(監察御使)가 되었을 때, 수도(首都)의 장관을
탄핵하였다가 도리어 양산현(陽山縣:廣東省) 현령으로 좌천되었다. 이듬해 소환된 후로는 주로 국자감(國子監)에서 근무하였으며,
817년 오원제(吳元濟)의 반란 평정에 공을 세워 형부시랑(刑部侍郞)이 되었으나, 819년 헌종황제(憲宗皇帝)가 불골(佛骨)을
모신 것을 간하다가 조주(潮州:廣東省) 자사(刺史)로 좌천되었다. 이듬해 헌종 사후에 소환되어 이부시랑(吏部侍郞)까지 올랐다.
문학상의 공적은 첫째, 산문의 문체개혁(文體改革)을 들 수 있다. 종래의
대구(對句)를 중심으로 짓는 병문(騈文)에 반대하고 자유로운 형의 고문(古文)을 친구 유종원(柳宗元) 등과 함께 창도하였다.
고문은 송대 이후 중국 산문문체의 표준이 되었으며, 그의 문장은 그 모범으로 알려졌다. 둘째, 시에 있어 지적인 흥미를
정련(精練)된 표현으로 나타낼 것을 시도, 그 결과 때로는 난해하고 산문적이라는 비난도 받지만 제재(題材)의 확장과 더불어
송대의 시에 끼친 영향은 매우 크다. 사상분야에서는 유가의 사상을 존중하고 도교 ·불교를 배격하였으며, 송대 이후의
도학(道學)의 선구자가 되었다. 작품은 《창려선생집(昌黎先生集)》(40권) 《외집(外集)》(10권) 《유문(遺文)》(1권) 등의
문집에 수록되었다.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The Ones Who Walk Away from Omelas / 어슐러 K. 르 귄Ursula K. Le Guin
낭랑한 종소리에 제비들이 높이 날아오르면서,
바닷가에 눈부시게 우뚝 선
도시 `오멜라스'의 여름 축제는 시작되었다. 항구에 정박한 배들은 모두
돛에 매인 밧줄마다 깃발들이 나부꼈다. 빨간 지붕에 울긋불긋하게 담장을
단장한 집들과 이끼가 곱게 깔린 정원들 사이로 난 거리를 따라, 길가에
늘어선 가로수 그늘을 거쳐, 넓은 공원과 관청을 지나 축제 행렬이 나아갔다.
빳빳하게 다림질한 자주색이나 회색 예복을
입은 노인들과 엄숙한 표정의
직공장들, 그리고 아기를 안은 채 걸으면서 소곤거리는 수수한 복장을 한
명랑한 여인네들로 이루어진 행렬은 점잖은 축에 들었다. 또다른 거리에서는
징과 탬버린 소리가 뒤섞인 음악이 점차 빨라졌고, 그 음악에 맞춰 사람들이
춤을 추며 나아갔다. 행렬 자체가 춤이었다. 음악과 노래소리를 꿰뚫고
제비가 날아오르듯이 아이들은 높은 소리로 외쳐 대면서 행렬들 틈바구니를
헤집고 돌아다녔다.
모든 축제 행렬은 천천히 굽이치며
도시의 북쪽으로 향했다. 사람들이
`푸른 들판' 이라고 부르는 촉촉하게 물기젖은 그곳의 넓은 풀밭에서는,
환한 햇살 아래 벌거벗은 소년 소녀들이 진흙투성이 발을 한 채 길고 유연한
팔로 경주에 앞서 들뜬 말들을 애써 달래고 있었다. 말에는 안장을 얹지도
재갈을 물리지도 않은 채, 단지 고삐만 물려 놓은 상태였다. 여러 갈래로
땋은 갈기에는 은색, 금색, 녹색 리본이 달려 있었다. 말들은 코를 힝힝
울리고 껑충거리며 서로 위세를 뽐내었다. 동물 중 오로지 말들만이 사람들의
축제가 마치 자신들의 것인 양 무척 흥분해 있었다. 멀리 북서쪽으로는 산
봉우리들이 바다의 만 쪽에 위치한 `오멜라스'를 반쯤 감싼 모습으로 솟아
있었다. 아침 공기가 너무나 해맑아서 `열여덟 봉우리' 꼭대기에 녹지 않고
쌓여 있는 눈이 짙푸른 하늘 아래 햇빛을 받으며 몇 마일에 걸쳐 백금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경마 코스를 따라 꽂아 놓은 깃발들이
알맞게 불어오는 바람을 받아 이따금
펄럭거렸다. 드넓게 펼쳐진 푸른 풀밭의 고요함 속에서, 도시의 거리를
지나 먼 듯 가까운 듯 조금씩 다가오면서 때때로 흩어지며 다시 모였다가
마침내 낭랑하게 울려 퍼지는 즐거운 종소리로 터져 나오는, 대기의 아련하고
달콤한 내음을 담은 음악 소리가 바람결에 실려 왔다.
즐거워라!
그 누가 이러한 즐거움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 것인가? 그
누가 `오멜라스' 사람들을 제대로 묘사할 수 있을 것인가?
행복하게 생활한다고 해서 그들은
결코 단순 무지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이제 우리는 더이상 그들을 높이 평가하지 않는다. 그들 얼굴에 퍼졌던 웃음도
이제는 낡은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오멜라스'를 이와 같은 식으로
묘사하면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선입감을 갖게 마련이다. 멋진 종마 위에
올라앉아 고귀한 기사들의 호위를 받거나, 근육질의 노예들이 들쳐 맨 황금
가마에 앉은 왕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오멜라스'에는 왕이 없었다.
그들은 칼을 휘두르지 않았고, 노예를
부리지도 않았다. 그들은 야만인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오멜라스'의 법률과 규칙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단지
그런 것들이 유례없이 적었을 것이라고 추측할 따름이다.
군주제나 노예제를 채택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들은 주식 시장이나 광고, 비밀
경찰, 폭탄 없이도 잘 지냈다. 그러나 다시 한번 이야기하건대 `오멜라스'
사람들은 단순 무지하지 않았고, 유쾌한 양치기도 아니었으며, 고결한 야만인도
유순한 유토피아 주의자들도 아니엇다. 그들의 세상은 결코 우리들 세상보다
단순하지 않았다. 문제는 우리들이 행복을 어리석은 것이라고 여기는
현학자들과 궤변가들이 부추기는 나쁜 습관에 빠져 있다는 점이다. 오직
고통만이 지적인 것이며 악한 것만이 흥미로운 것이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것은 예술가들에 대한 배신 행위에 불과하다. 악덕의 진부함과 고통의
끔찍한 권태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에 불과하다. 고칠 수 없다면 차라리
동참하라! 고통스럽다면 반복하라는 식인 것이다. 그러나 절망을 찬양하는
행위는 기쁨을 비난하는 짓이며, 폭력을 용인하는 짓은 그 밖의 모든 것들을
잃어버리는 짓이다.
우리는 이미 갖고 있던 거의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더이상 행복한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즐거움을 축복할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내가 어찌 `오멜라스' 사람들에 관해서 여러분에게 이렇다, 저렇다
말을 늘어놓을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은 순진하고 행복에 겨운 어린애들이
아니다. 물론 그들의 아이들은 행복하게 지내지만 말이다. 그들은 결코
비참하지 않은 인생을 영위해 나가는 성숙하고, 이지적이며 열성적인 성인들인
것이다. 그야말로 진정 기적과도 같은 일이 아니겠는가! 아아, 내가 그러한
경이로움을 훨씬 더 잘 묘사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여러분을 납득시킬 수
있으면 좋으련만......
나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여러분 귀에는 `오멜라스'가 아주 오랜 옛날,
머나먼 곳에 있었던 동화 속의 도시처럼 들릴 것이다. 물론 각자가 나름대로
상상에 따라 그곳을 마음 속에 그려보는 것이 가장 좋을 수도 있으리라.
왜냐하면 나로서도 여러분 모두를 일일이 만족시킬 만큼 제대로 설명을 할 수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기술 문제를 생각해 보자.
그들의 거리에는 자동차가 다니지 않고
헬리콥터 따위도 날아다니지 않으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왜냐하면
`오멜라스'의 사람들은 행복하기 때문이다. 무릇 행복이란, 꼭 필요한 것,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해롭지도 않은 것, 그리고 해롭기만 한
것을 확실히 구별할 줄 아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그러나 두번째 항목을 생각할
때에 -- 즉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해롭지도 않은 많은 것들,
다시 말해서 안락함, 호화로움, 풍요로움 등등 -- 그들은 중앙 난방이나 지하철,
세탁기, 그리고 우리들이 아직 발명하지 못한 그 밖의 굉장한 기구들, 이를테면
공중에 떠다니는 조명등이나 영구 동력 기관, 우리가 흔하게 앓아 눕는 감기의
치료제 따위를 모두 갖추고 있을지도 모른다. 혹은 그런 것들을 전혀 갖추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런 점들은
여러분 마음대로 생각하면 된다.
그러나 `오멜라스' 해안 근처에 흩어져 사는
여러 도시 사람들이 무척이나
빠른 자그마한 열차나 이층 전차를 타고 축제일 며칠 전부터 몰려든
`오멜라스'의 기차역은 비록 웅장한 농산물 시장보다는 평범해도 시내에서는
그래도 가장 멋진 건물이라는 것만은 꼭 밝혀 두고 싶다. 기차야 그렇다 치고
`오멜라스'에 대해 지금껏 이야기한 것만으로도 여러분들 중 도덕 군자 티를
내는 몇몇 사람들은 크게 놀라지 않을까 걱정스럽기도 하다. 즐거운 웃음,
종소리, 행렬, 경주마들, 게다가 어휴...... 만약 괜찮다면 지금까지 말한
목록에다가 북새통의 파티를 하나 더 덧붙여서 생각해도 좋으리라. 북새통의
파티 생각이 `오멜라스'를 눈앞에 그리는 데 도움이 된다면 부디 주저하지
마시기를......
그렇다고 눈부신 나체의 남녀 사제들이
우글거리는 곳에서 이미 반쯤은
황홀경에 취해서는, 저 거룩한 피의 신성과 하나되기를 소망하는 사람이라도
남자건 여자건, 혹은 연인이건 낯선 사람이건 간에 가리지 않고 누구하고든지
마구 성관계를 맺으려 드는 사원을 연상하지는 말라. 사실 처음에는 나도 그런
생각을 떠올리기는 했다. `오멜라스'에는 사원이 없다고 하는 편이, 적어도
사람들이 득시글거리는 그런 사원은 아예 없다고 하는 편이 낫겠다. 종교는
있지만 사제 계급은 없는 셈이다. 물론 굶주린 이들에게 성스러운
수플레(달걀 흰자위에 우유를 섞은 다음 거품을 일게 하여 구운 요리)를 주듯이
자신의 아름다운 나체를 즐거움으로 제공하면서 이곳저곳을 거닐 수도
있으리라. 그들도 행렬에 참여케 하자. 교합중인 이들의 몸뚱이 위에서
탬버린을 치고, 징을 울려 욕정의 즐거움을 알리며 다음이야말로 상당히 중요한
점인데 그러한 황홀한 의식 끝에 태어난 후손들을 사랑하고 돌봐 주도록 하자.
내가 아는 한가지 사실은 `오멜라스' 사람들은 아무에게도 죄가 없다는
사실이다.
처음에 나는 `오멜라스'에는 마약이 없는 줄
알았지만, 그것은 너무나
청교도적인 생각일 뿐이었다. 마약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오멜라스' 거리
어디서든지 희미하지만 은은하게 감도는 `드루즈'의 향기를 맡을 수 있으리라.
`드루즈'는 처음엔 몸과 마음을 상쾌하고 맑게 해주고, 이어서 몇 시간 동안
꿈꾸는 듯한 나른함을 안겨 주며, 우주의 가장 깊숙한 신비를 드러내 보이는
황홀경을 경험케 한 다음, 마침내 도저히 믿기 어려울 정도의 터질 듯한 섹스의
즐거움을 선사해 준다. 게다가 `드루즈'는 중독성도 없다.
그러나 보다 소박한 취향을 가진 이들을
위해서라면 맥주가 제격이리라. 이
즐거운 도시에 그 밖에 무엇이, 도대체 무엇이 더 필요하겠는가? 물론
전투에서 얻은 승리의 느낌, 용맹스러움에 대한 경의가 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성직자 없이도 잘 살 수 있듯이, 우리는 군인 없이도 잘살아 갈 수
있다. 무참한 학살을 통해 얻는 즐거움은 올바른 즐거움일 수 없으며, 그런
식으로는 진정한 즐거움을 얻을 수도 없다. 설령 즐거움이 있다손 쳐도 그것은
무서운 것일 뿐이며 그러한 즐거움의 크기 역시 미미하기 짝이 없을 뿐이다.
한량없이 관대한 만족감, 이 세상 모든 이들의 영혼 속에 살아 있는 가장
고결하고 공명 정대한 부분들과의 교감, 그리고 이 세상의 여름이 내보이는
위용! 그런 것들이야말로 `오멜라스'의 사람들 가슴 속에 풍기는
향기로움이며, 그들이 축복해 마지 않는 승리야말로 그러한 향기를 내뿜는 삶인
것이다. 그들 대부분에게 `드루즈'가 필요하리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이다.
이제 행렬들 대부분이 `푸른 들판'에 도착했다.
들판 한쪽에 세워진
빨간색과 파란색의 천막에서 맛잇는 요리 냄새가 퍼져 나온다. 자그마한
어린이들의 귀여운 얼굴은 끈적끈적한 과자 부스러기가 묻어 있다. 소년
소녀들은 제각기 말에 올라타서는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출발선에 정렬한다.
작고 뚱뚱한 한 노파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바구니에서 꽃을 한 송이씩 꺼내어
사람들에게 나눠 주고, 훤칠한 젊은이들은 그 꽃을 자신들의 윤기 흐르는
머리카락에 꽂는다. 모여 있는 사람들의 한쪽 끝에는 아홉이나 열 살쯤
먹었음직한 아이가 혼자 앉아서 나무피리를 분다. 사람들은 멈춰 서서 귀를
기울이고 미소를 짓지만 아무도 그 아이에게 말을 걸지는 않는다. 쉼 없이
연주를 계속하는 아이의 검은 눈은 달콤하고 여린 마술과도 같은 피리소리에
깊이 빠져 들어 주위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는 마침내 연주를 마치고 피리를 든 손을 천천히 내린다.
아이의 오붓한 침묵이 신호가 된 양
출발선 가까이에 있는 관람석에서 애조를
띤 우렁찬 나팔소리가 급박하게 울려 퍼진다. 말들은 늘씬한 뒷다리로 뛰어
오르거나 울음소리로 대답한다. 기수들은 상기된 표정으로 말의 목덜미를
토닥이고 달래면서 속삭인다.
"진정하렴, 진정해. 사랑하는 말아......"
그들은 출발선에 나란히 정렬하기 시작한다.
경주 코스를 따라 몰려 있는
사람들이 마치 들판에 핀 채 바람에 흔들리는 수풀이나 꽃처럼 보인다. 마침내
`여름 축제'가 시작된 것이다.
여러분은 내 이야기가 믿어지는가?
축제와 도시, 그리고 온갖 즐거움에 관한
나의 설명에 수긍이 가는가? 아니라고? 그렇다면 한 가지 더 이야기하기로
하자.
`오멜라스'의 아름다운 공공 건물들 중
한 군데의 지하실에는 방이 있다.
아니면 어느 널따란 개인 저택의 지하실일 수도 있다. 그 방에는 굳게 잠긴
문이 하나 있을 뿐 창문도 없다. 지하실에 달린 거미줄투성이의 창문으로 새어
들어온 한 줄기 희미한 빛이 그 방 판자벽의 갈라진 틈을 따라 날리는 먼지를
빼꼼이 비출 뿐이다. 그 작은 방의 한쪽 구석에는 덩어리지어 엉긴 채
딱딱하게 굳어서 악취를 뿜어 대는 자루걸레 두어 자루가 벽에 기대어 서 있고,
그 옆에는 녹슨 양동이 하나가 놓여 있을 뿐이다. 바닥은 몹시 지저분하고
습기가 차서 축축한 것이 여느 지하실 창고와 다를 바 없다. 폭이 세 걸음에
너비는 두 걸음 정도인 방은, 청소 도구들을 넣어 두는 벽장이나 쓰지 않는
연장을 처박아 두는 다락에 불과하다.
그 방에 어린아이 한 명이 앉아 있다.
남자아이일 수도 있고 여자아이일
수도 있다. 겉보기에는 여섯 살쯤 되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거의 열 살쯤
먹었다. 그 아이는 정신박약아이다. 태어날 때부터 문제가 있었는지도
모르고, 공포와 영양 실조 때문에 점점 우둔해져서 마침내 버림받은 것인지도
모른다. 아이는 녹이 슨 양동이와 자루걸레에서 떨어진 곳에 구부정하게 앉은
채로 이따금 자기 코를 쥐거나 발가락 또는 생식기를 더듬더듬 만지작거린다.
아이는 자루걸레를 무서워한다. 자루걸레들이 무시무시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아이는 눈을 꼭 감아 보지만 자루걸레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고, 문은
굳게 잠겨 있으며, 아무도 오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다.
그러다가 아주 가끔씩 -- 아이는 그때가 언제인지
혹은 그 간격이 얼마나
되는지 알지 못한다 -- 문이 요란스럽게 흔들리다 열리고 한 사람 또는 여러
사람이 문간에 나타날 때가 있다. 그 중에는 방안으로 들어와서 아이를 발로
차 일으키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코 아이에게 가까이 가지
않는다. 단지 놀랍고 메스꺼운 표정으로 쳐다보기만 할 뿐이다. 서둘러서
밥그릇과 물주전자가 채워지고 나면 문은 다시 굳게 잠기고 들여다보던 눈들도
사라진다. 문간의 사람들은 결코 입을 여는 법이 없지만, 내내 지하실에서
갇혀 있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밝은 햇빛과 엄마의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는 그 아이는 이따금 말을 한다.
"전 좋아질 거예요!"
아이는 말하곤 한다.
"절 내보내 주세요. 전 다시 좋아질 거예요!"
결코 아무도 대답해 주지 않는다.
아이는 밤이면 살려 달라고 소리를
지르고, 크게 소리내어 울기도 했지만 지금은 단지 `으어어, 으어어'하는
일종의 신음 소리만 낼 뿐이며 그 소리마저 점차 뜸해져 간다.
너무나도 야윈 아이의 장딴지에는 살이라곤 아예 없고, 배만 불룩
튀어나왔다. 아이는 기름과 옥수수가루 반 그릇으로 하루를 연명한다. 아이는
벌거벗은 채이다. 자신의 배설물 위에 계속 앉아 있었기 때문에 엉덩이와
허벅지는 짓무르고 헐어서 상처투성이다.
`오멜라스' 사람들은 아이가 그곳에 있음을
모두들 알고 있다. 직접 와서 본
사람도 있고, 단지 그런 아이가 있다는 사실만 아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
아이가 왜 그곳에 있어야 하는지 모든 사람들은 잘 알고 있다. 왜 그래야만
하는지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지만, 자신들의
행복, 이 도시의 아름다움, 사람들 사이의 따뜻한 정, 아이들의 건강, 학자들의
지혜로움, 장인들의 기술, 그리고 심지어는 풍성한 수확과 온화한 날씨조차도
전적으로 그 아이의 혐오스러울만큼 비참한 처지에 달려 있다는 사실은 모두가
잘 알고 있다.
`오멜라스'의 아이들은 여덟 살 내지 열두 살쯤 되면,
그러니까 말귀를
알아들을 만한 나이가 되면 그 사실에 대한 설명을 듣게 된다. 지하실의
아이를 보러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젊은이들이지만, 때로는 나이 든 어른이
오기도 하며, 한번 더 보려고 다시 오는 이들도 꽤 있다. 아무리 설명을
그럴듯하게 들었다고 해도 젊은 구경꾼들은 그 광경을 보고는 언제나 충격을
받고 가슴 아파한다. 자신들이 그 아이보다 훨씬 낫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에 토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동안 전해 들었던 모든
설명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화를 내고, 분노를 느끼며, 무력감에 빠져든다. 그
비참한 아이를 위해서 뭔가 해주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들이 해줄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물론 아이를 그 지독한 곳에서 밝은 햇살이
비추는 바깥으로 데리고
나온다면, 아이를 깨끗하게 씻기고 잘 먹이고 편안하게 해준다면 그것은 정말로
좋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정말 그렇게 한다면, 당장 그 날 그 시간부터
지금껏 `오멜라스'가 누렸던 모든 행복과 아름다움과 즐거움은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것이 바로 계약인 것이다. 단 한가지의 사소한 개선을 위해서
`오멜라스'에 사는 모든 이들이 누리는 멋지고 고상한 매일매일의 삶을
맞바꾸어야만 한다는 것, 한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는 기회를 얻기 위해서는
수천 명의 행복을 내던져 버려야 한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지하실 안에서
벌어지는 죄악을 방기하게 만드는 이유인 것이다.
계약은 엄격하며 절대적인 것이다.
그 아이에게는 친절한 말 한마디조차도 건네면 안된다.
그 아이의 모습을 보고서 이러한 끔찍한
모순에 직면했을 때, 대개의
젊은이들은 눈물을 흘리거나, 혹은 눈물도 나지 않을 만큼 화가 치밀어서
집으로 돌아간다. 그러고는 몇 주일 혹은 몇 년씩 그 아이를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들은 설령 그 아이를 풀어 줄 수 있다고 해도
그것이 그다지 좋은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다. 약간 더
따뜻해지고, 약간 더 많은 음식을 먹게 되더라도 아이는 의심할 여지없이 아주
조금밖에 즐거워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기쁨을 알기에는 너무나
퇴보했고 우둔해진 것이다. 더욱이 그 아이는 너무나 오랫동안 자유로워지는
것을 두려워해 온 것이다. 너무도 황량하게 지내 왔기 때문에 인간적인 대우에
제대로 반응하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너무나도 오랫동안 그런 상태로 지내
왔기 때문에 아이를 보호해 주고 있는 벽과, 그 아이의 눈에 익숙해진 어둠과,
깔고 앉은 배설물이 사라진다면 오히려 더욱 비참하게 느낄 것이다.
그 아이에 대한 의롭지 못한 행위에
가슴 아파하면서 흘리던 눈물은 현실이
보여 주는 이토록 끔직한 정의를 알아차리고 수긍하기 시작할 때면 메말라
간다. `오멜라스' 사람들의 빛나는 삶의 원천이야말로 그들의 눈물과 분노,
관용을 베풀려는 의도, 그리고 무력한 수긍에 있는 것일는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김 빠지고 무책임한 행복이란 있을 수 없다. 그들은 지하실의 아이와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결코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들도
연민이란 것을 알고 있다. 고상한 취향으로 지어진 건축물들, 심금을 울리는
음악, 심오한 과학을 가능케 하는 그 모든 것들이 바로 그 아이의 존재
때문이며, 또한 그들이 그런 아이가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자신들의 아이들에게 그토록 자애롭게 대하는 것도 바로 그 아이
때문이다.
만약 그 아이가 어둠 속에서 코를 훌쩍이며
비참하게 앉아 있지 않다면,
피리를 불던 아이는 더이상 즐거운 음악을 연주할 수 없을 테고, 또 다른
아이들이 말 잔등에 보기 좋게 올라탄 채 여름날 첫 아침의 눈부신 햇살을
받으며 경주를 벌이려 줄지어 서 있을 수 없음을 그들은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이제 여러분은 그들에 관한 이야기가 믿어지는가?
이제는 좀 더 납득이
가는가? 그러나 아직도 할 이야기가 하나 남아 있다. 이 이야기야말로 진정
믿기 어려운 일이다.
이따금씩 지하실의 아이를 보고 난
청소년들 중에는 눈물을 흘리거나 분노에
찬 채로 그냥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 이들이 있다. 실제로 그들은 결코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때때로 좀더 나이든 남자나 여자들도 하루 이틀쯤 침묵에
잠겨 있다가는 집을 떠난다. 그들은 길로 나가서는 거리를 따라 홀로 걸어
내려간다. 그들은 한참을 걸은 끝에 `오멜라스'시의 아름다운 입구를 곧장
빠져나간다. `오멜라스'의 농장들을 가로질러 계속 걸어간다. 소년이건
소녀건, 나이든 남자건 여자건 간에 모두들 혼자서 간다.
밤이 찾아오면 그들은 마을의 한 길을 따라,
창문에서 노란 불빛이 새어
나오는 집들 사이를 지나, 들판의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 간다. 그렇게 그들은
혼자서 서쪽으로, 아니면 산맥을 향해 북쪽으로 간다. 그들은 계속 걸어간다.
그들은 `오멜라스'를 떠나 어둠 속으로 가서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들이
가는 곳은 우리들 대부분이 이 행복한 도시에 대해 상상하는 것보다 더
상상하기 어려운 곳이다. 나는 그곳을 결코 제대로 묘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곳이 아예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가고자 하는 곳을 알고 있는 것 같다.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은......
부산대학교 제1도서관의 연장근무자들은 각 층마다 한명씩 있었다. 이용자가 적어 인원효율이 안좋다며 이번학기부터 예산절감차원에서 인원을 한명으로 줄였는데 그 한명이 나다. 어디에나 변화의 바람은 불어닥치기 마련인것이다. 처음에는 일을 어떻게 어느정도까지 해야 할지 감이 안 잡혔는데 (도서관의 그 누구도 혼자서 세개 층을 관리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모른다) 이제 일이 거의 틀에 잡혔다.
저녁을 먹고 다섯시 오십분쯤 도착, 3층에서 학위논문실의 열쇠를 받아서 내려온뒤 양치질을 한다. 8시까지는 2층 예체능 자료관의 데스크를 지킨다. 누군가 3층 과학기술연속간행물실과 4층 과학기술단행본실에 문의사항이 있으면 전화를 통해 2층으로 연락하는 시스템으로 가자-고 의논은 했었지만 지금까지 딱 한명이 전화를 걸어왔었다. 3층에 있을때보다 물어보는 사람이 적은것 같다. 사람이 없으면 없는데로 이용자들은 어떻게든 알아서 해결하고 있는건지 아니면 지하철역이 되어버린 같은 도서관(부산의 대부분의 지하철역에는 역무원이 없다)에 대해 욕을 하고는 그냥 불편한채로 지내는건지 아니면 애초에 도서관에 기대하는 것이 없었던건지는 모르겠다. 학위논문 찾는 사람이 있으면 찾아주는 주거나 하는 등의 일이 언제 생길지 몰라 그냥 쉬거나 수업자료를 읽거나 노트 필기를 하거나 하면서 지낸다.
8시가 되면 2층과3층의 보안점검표를 가지고 1층데스크로 가서 보안점검사인을 받고 반납된 책을 가져온다. 4층의 책이 제법 많은데 그것들을 임시서가에 꽃아두는것까지가 내 일이다. 책이 제법 많아서 삼십분정도 투자를 해야 하는 일이다.
8시50분이되면 4층으로 가서 마칠준비를 한다. 학업에 열심인 사람들에게 마칠시간이 되었노라 나도 퇴근해야 하니 어서들 짐을 싸서 가주기 바란다오 하고 알리는 악역을 맡는다. 여기저기로 뛰어다니며 수십개의 의자를 밀어넣고, 사람들이 뽑아보고는 아무대나 놓고 간 책들과 책상위에 두고간 쓰레기들을 모은다. 복사기들과 컴퓨터들과 불을 끄고 문을 잠그면 도서관이 잠들 준비가 끝난다. 간단한 일이지만 최적화된 루트를 몰랐을때는 시행착오가 많았다.
이상의 일을 3층과 2층에서도 반복한다. 할 일이 많고 , 마칠 시간이 되어도 그냥 있는 사람들 때문에 언제나 늦게 마치게 된다. 사정이 이러하니 차라리 출근을 20분정도 늦추어 달라고 했으나 미적지근한 반응이다. 돈받는 만큼만 일하는게 원칙이라 페이스 조절을 하며 적당히 일하고 있다.
" 최대의 중량 - 어느 날 악령이 그대의 가장 깊은 고독 속으로 살며시 찾아들어 이렇게 말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네가
지금 살고 있고, 살아왔던 이 삶을 너는 다시 한 번 살아야만 하고, 또 무수히 반복해서 살아야만 할 것이다. 거기에 새로운
것이란 없으며, 모든 고통, 모든 쾌락, 모든 사상과 탄식, 네 삶에서 이루 말할 수 없이 크고 자은 것들이 네게 다시 찾아올
것이다. 모든 것이 같은 차례와 순서로 - 나무들 사이의 이 거미와 달빛, 그리고 이 순간과 바로 나 자신도. 현존재에 몸을
내던지며, 그렇게 말하는 악령에게 이를 갈며 저주를 퍼붓지 않겠는가? 아니면 그대는 악령에게 이렇게 대답하는 엄청난 순간을
경험한 적이 있는가?: '너는 신이로다. 나는 이보다 더 신성한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노라!' 그러한 생각이 그대를 지배하게
되면, 그것은 지금의 그대를 변화시킬것이며, 아마도 분쇄시킬 것이다. '너는 이 삶을 다시 한 번, 그리고 무수히 반복해서
다시 살기를 원하는가?'라는 질문은 모든 경우에 최대의 중량으로 그대의 행위 위에 얹힐것이다! 이 최종적이고 영원한 확인과 봉인
외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그대 자신과 그대의 삶을 만들어 나아가야만 하는가?" (프리드리히
니체,안성찬.홍사현 옮김, '니체전집 12' : 즐거운 학문- 메시나에서의 전원시.유고(1811년 봄~1822년 여름),
서울: 책세상,2005,314쪽)
이 대목과 관련있다고 교수님이 이야기 해준 선문답
문:15일 전에 무엇을 했는지 묻지 않겠다. 15일 후에는 무엇을 하고 있겠는가? (대답해 봅시다- 제 경우에는 너무 지쳐 있어서 뭐 오늘하고 같겠지 학원갔다 학교갔다가 집에가서 씻고 자겠지 라는 우답을 했습니다-_-) 우문선사(누군지는 모르겠음)의 답: 매일 매일 좋은 날 되소서-
한장 한장이 모여 책 한권을 이루고 매일이 모여 인생이 되는것입니다. 책의 내용은 매일 적어가는것이고요. 한순간의 무게가 최대의 중량입니다.
먼지 낀 유리창 너머로 바람이 세차게 몰아치고 있는 거리를 차분히 내다보며, 문자는 장갑을 한쪽 또 한쪽 끼었다. 빨 때마다 오그라들고 털이 뭉쳐 작아질 대로 작아졌기 때문에 그녀는 장갑 낀 손가락 새새를 꼭꼭 눌러주어야 했다. 몇 년 전 이미 한 차례 유행이 지나간 알록달록한 털장갑을 여태 끼고 다니는 사람은 그녀 주위에 아무도 없었다. 장갑만 구식인 건 아니었다. 소매 끝이 날깃날깃 닳아빠진 외투며, 여름도 겨울도 없이 신어온 쫄쫄이식 단화, 통은 넓고 기장은 짧아 발목이 껑뚱해 보이는 쥐똥색 바지, 보푸라기가 한켜나 앉은 투박한 양말, 서랍에서 꺼내어 얼찐거릴 때마다 반찬 내를 물씬 풍기는 가방 등, 몸에 걸치고 지닌 것마다 구멍만 뚫리지 않았다 뿐이었다. 문자의 이런 차림새는 사십 고개를 바라보도록 노처녀로 알려진 그 녀의 입장을 더한층 측은해 보이게 했다. 아동도서를 간행하는 H출판 사에서는 문자는 영업부 편집부 통틀어 최고참이었다. 입사 이래 현 재까지 그녀는 줄곧 교정일만 보아왔다. 편집부 정원은 부장을 포함해서 일곱이었다. 그사이 문자만 제외하고 자리마다 얼굴이 수없이 바뀌었다. 대학을 갓 졸업한 축일수록 반년도 못 채우고 떠나갔다. 출근 첫날부터 의자가 기우뚱거린다, 화장실 이 더럽다, 층계가 가파르다, 등등의 불만이 하나씩 쌓여가다가 나중엔 말끝마다 '이놈의 데 얼른 떠나야지, 더러워서 못해 먹겠어' 하고 궁시렁거렸다 하면 견뎌야 한두 달이 고작이었다. 문자는 그런 나이 어린 동료들로부터 노골적으로 따돌림을 받았다. 그네들로서는, 가르마에 새치가 희끗희끗하도록 무엇 하나 이룩해 논 것 없이, 한평생 있어봐야 별 볼일 없는 출판사에, 그것도 말석에서만 십 년을 보낸 노처녀 동료가 있다는 그 자체가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그네들의 눈엔, 문자가 교정지를 앞에 하고 등을 쭈그리고 있을 때는, 그녀의 등 뒤에만 보이지 않는, 유난히 시린 바람이 회오리치고 있 는 듯이 여겨질 때가 많았다. 그리고 그녀의 턱언저리는 늘상 소름이 돋아 까실까실한 것같이 보였다. 점심시간에 다들 우르르 몰려나가 곰탕 한 그릇씩 먹고, 다방에 들러 커피까지 마신 뒤 사무실로 돌아와 보면, 두 손으로 뜨거운 보리차 컵을 감싸쥔 문자가 그네들을 맞았다. 그네들은 문자가 측은하다 못해 마음이 언짢아져, 어쩌다 그녀 쪽에서 말을 건네오면 심히 퉁명스럽게 내쏘았다. 그렇더라도 문자는 한 번도 기분 나쁜 표정을 드러내는 일이 없었다. 나이 어린 부장으로부터 이따금 민망할 정도로 면박을 받아도 늘 다소곳이 받아들였다. 동료간에 그런 것처럼 사내 규칙에 대해서도 그녀는 한마디 불평 없이 성실하게 지켰다. 다른 동료들이 입 모아 사장을 험구하고, 시설이나 월급에 대해서 불평을 늘어놓아도 그녀만은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그런 그녀를 두고, 나이 어린 동료들은 문자가 밥줄이 떨어질 까봐 두려워해서 몸을 사리는 줄로 알았다. 그네들은 문자가 주눅들고 처량해 보일 때마다 남몰래 자기자신에게 다짐하고 했다. "나도 저렇게 될까 무섭다. 얼른 여기를 떠야지" 문자는 이제 창문으로부터 돌아섰다. 퇴근시간이 이십여 분이나 지났음에도 다른 동료들은 자리에 앉은 채 노닥거리고만 있었다. 퇴근 시간이 임박해지자 한참 전화가 오고 가고 하더니 저마다 약속이 된 모양이었다. 문자는 가방을 집어 들고 부장 쪽으로 다가갔다. 그가 다른 동료랑 하던 얘기를 끝낼 때까지 기다린 끝에, 먼저 가겠다는 인사말을 남기 고 사무실에서 나왔다. 계단을 서너 개 내려오노라니, 안에서 미스 최의 조심성 없는 목소리가 그녀에게까지 들려왔다. "참 안됐어요. 토요일인데도 전화 한 통 걸려오지 않구" "집으로 가봤자 반겨주는 사람도 없을 테구" "어머, 왜요? 결혼은 안했더라도 가족은 있을 거 아녜요" "이런, 한 사무실에서 너무들 하시군. 같은 여자끼린데 신상파악은 하고 있어야지" "본인이 가르쳐주지도 않는데 어떻게 알아요?" "하긴 나도 몇 다리 건너들은 소리지만, 부모는 일찍 돌아가시고 오빠가 한 분 있었는데 수년 전에 이민 가고 그때부터 내내 혼자처지 인가 봐. 고생도 무지무지하게 하고. 지금까지도 용두동인지 어디에 세들어 있는 방 전세금이 전부라나 봐" "이상하다? 옷도 안해 입고, 도시락도 꼭꼭 싸오겠다, 그만큼 알뜰 하게 십 년이나 직장생활을 한 사람이 어째서 그 정도밖에 못 모았을 까" "이상하구 자시구, 남에게 신경쓸 거 없이 미스 최나 뜸들이지 말고 대꺽 면사포 쓰라구" 문자는 그네들이 혹시나 이쪽에서 들어다는 것을 알고 무안해 할까 봐 나머지 계단은 소리를 죽여 살며시 내려왔다. 길에 나서니 바람이 생각보다 매웠다. 언제나 좁은 골목에 한두 대 쯤은 정차하고 있어 행인을 불편하게 하던 승용차들도 보이지 않았다. 길 양쪽으로 즐비한 밥집의 문전도 평일 같으면 드나드는 사람들로 한 창 북적댈 시간이었으나 한산하기만 했다. 어느 집 추녀의 못이 삭았 는지 함석 귀가 들려 널뛰는 듯 덜컹거리는 소리만 자못 바람의 기세를 짐작게 했다. 그녀는 목덜미가 선득거리자 외투깃을 올렸다. 회사 앞 골목을 빠져 나오며 그녀는 생각했다. 내 인생이 남 보기에 그렇게 안되어 보일 만큼 실패 ?걸까? 그러자 괜히 웃음이 터져나올 것 같아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자 기가 동료들과 세상 사람들을 멋지게 속여넘기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녀가 세상 사람들 앞에 은닉하고 있는 것은 남루한 옷차림의 이돌영이 도포 속에 감춰가지고 있던 마패 같은 것은 아니었다. 또는 텔레비전이나 영화에서 가난한 여주인공이었던 여자 가 알고 보니 무슨 재벌 총수의 딸이더란 식의 돈 많고 지위 높은 아버지를 감춰두어서도 아니었다. 글쎄, 그녀로선 남들이 눈치채지 못하 는 자기 맘속의 어떤 그윽한 힘찬 상태, 그걸 뭐라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문자로선 유행의 흐름이란 데 따라 바지통이 넓어지든 좁아지든, 외 투 길이가 짧아지든 길어지든, 또 동료들이 자기를 미스라 부르든 선생이라 부르든, 의자가 기우뚱거리든, 사장이 잔소리가 많든 적든, 그 런 것은 정말 아무래도 좋은 일로 여겨졌다. 언젠가 자칭 <교정박사>라는 비교적 나이든 한 여자가 새로 입사했다. 그녀는 출근한 지 열흘도 못 되어 옆자리의 남자직원이 자기를 선생이라 부르지 않고 미스라 부른다고 대판 싸운 끝에 이튿날 사표를 집어던졌다. 문자는 삿대질을 하며 악악거리는 그녀를 멀거니, 신기한 듯이 쳐다보며 이렇게 생각했다. <남들이 자기를 뭐라 부르든 그게 무슨 큰 대수로운 일이라고.> 도로 자기의 교정지 위로 고개를 떨군 문자는 턱을 깊숙이 감춘 채 혼자 빙그레 미소지었다. 타인의 눈에 자기가 형편없이 초라하게 비치어 있는 것을 의식할 때 도 그녀는 잠자코 맘속으로만 이렇게 생각했다. <그래, 불쌍해 보여도 좋고, 초라해 보여도 좋다. 너희 맘대로 생각해라.> 또 어떤 날은 출근해서 서랍을 열어보면 쓸 만한 사무용품들이 다 없어지고 몽당연필 하나와 볼펜 껍질만 소롯이 남아 있는 경우도 있었 다. 그때도 그녀는 몽당연필 하나만으로 견디든가 자기 돈으로 다른 볼펜을 사오면 사왔지 절대로 내색하지 않았다. 그녀는 속으로만 이렇게 생각했다. <그래 좋다. 내게서 필요한 것이 있으면 다 가져가라> 다른 회사로 옮겨가 부장이 된 옛 동료가 봉급을 더 많이 주겠다는 조건으로 몇 차례나 그녀를 끌어가려 했을 때도 문자는 한사코 거절했다. <몇 푼 더 받겠다고 이리저리 철새처럼 옮겨다닐 사람은 다니라 지. 하지만 난 그깟 몇 푼 없어도 살 수 있어.> 일요일이나 공휴일에 일직을 하는 거며, 그 밖의 사내 궂은일들을 모두 슬그머니 그녀 앞으로 미뤄놓고 달아날 때도 마찬가지였다. <좋다. 그까짓 얼음물에 청소 좀 한다고 손이 떨어져나가는 건 아니니까, 뺄 사람은 빼라지.> 물론 이보다 몇 배나 불리하고 괴로운 일을 당한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자기에게 지워진 어떤 가혹한 짐에 대해서도 결코 화를 내거나 탄식하지 않았고, 피하지도 않았다. 그녀의 억센 정신은 아직 도 얼마든지 무거운 짐을 짊어질 수 있다는 듯이, 항시 무릎을 꿇고 있었다. 하지만 H출판사 직원들이나 주위 사람들이 보기에 문자는 그저 <죽 은 듯이 가만히 있는 사람>으로만 보였다. 그네들은 아무도 문자의 그런 침묵이 <어떤 상황, 어떤 조건 아래서도 나는 살아갈 수 있다> 는 절대 긍정적 자신감에서 기인된다는 것을 몰랐다. 더욱이 그 자신 감이, 자신들의 키를 훨씬 넘어 아주 높은 곳에 있는 어떤 존재와 겨루면서 몇만 리나 되는 고독의 길을 홀로 걸어오는 동안 생겨난 것이 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는 일만큼은 문자로서도 너무나 곤욕스러웠다. 정말 저녁때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이십만 원을 구해야 했다. 짓눌린 듯 무거운 맘으로 문자는 공중전화를 바라보며 걸었다. 한 청년이 전화에 매달려 통화를 하고 있었다. 그의 높은 웃음 소리가 그곳서 꽤 떨어진 문자에게까지 들려왔다. 며칠 전 통화했을 때 이모 는 분명히 확실한 어조로 잘라 말했다. 그러나 이제 다급해진 문자는 다시 한번 더 이모에게밖에 매달릴 데가 없었다. 그녀의 사정을 가장 잘 알고, 이따금 급할 때마다 돈을 변통해 왔던 친구에겐 아직 갚지 못한 빚이 있어 더 이상 매달려볼 염치가 없었다. 청년의 통화는 한정없이 늘어질 듯했다. 상대쪽에서는 빨리 오라고 조르는 모양이었고, 이쪽에서는 WBC타이틀매치 위성중계를 놓칠까봐 지금은 안 되겠다는 내용이었다. 청년의 등 뒤에 서서 시린 발을 동동거리며 문자는 건너 빌딩의 높은 꼭대기 위로 빠른 물살처럼 흘러가는 음산한 구름을 초조하게 바라보았다. 바람은 쉬이 잘 것 같지 않았다. 청년은 자기 주장대로 관철된 것이 흡족한 듯 담배를 한 대 피워 물고서야 공중전화 앞을 떠났다. 문자는 아직 청년의 미적지근한 체온이 배어 있는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이모, 전화 또 했어어요" 그 이상 할말은 없었다. 찍찍거리는 잡음만 한동안 계속되었다. 이 윽고 이모 쪽에서 '쯧쯧' 하고 약간 짜증스럽게 혀를 찼다. "하여간 얼굴이나 좀 보자" 눈물이 핑 돌아 앞이 흐릿한데도 문자는 기를 쓰고 그래야 하는 듯 이 누군가 전화받침대에다 그려논 낙서를 손톱으로 지우고 또 지웠다. 매달 얼마씩 가져가는 것 이외에 이따금 한수가 적지 않은 목돈을 요구해 오는 데 대해서 문자는 한 번도 그 이유를 묻지 않았다. 오히 려 돈을 받아 넣으면서 불안해진 한수가 제풀에 화를 내곤 했다. "젠장, 내가 뭐 이러고 싶어서 그러는 줄 알아. 두고 보라구" 그는 항시 이번만은 틀림없다고 전제하면서, 광산에 자금을 투자해 줄지도 모르는 유력한 자본주를 만나는 데 급히 필요하다고 했다. 문자 에겐 그의 말의 진부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옥조를 그가 데리고 있는 이상, 그를 도움줌으로써 옥조에게도 간접적으로 도움이 될 거라 여겨지기 때문이었다. 설사 그가 집에는 한푼도 들여놓지 않고 예전의 씀씀이대로 그것을 하룻밤 술값으로 날려버린다 하더라도, 역시 상관없었다. 문자는 어제 그런 일 때문에 더 이상 마음 상하지 않았다. 한수는 그녀에게 천 개 의 흉터를 내었을 뿐, 그녀가 그 흉터를 스스로 딛고 일어선 지금에 이르러서 그는 이미 그녀의 맘속으로부터 지나가버린 그 무엇이었다. 그가 무자비한 칼처럼 그녀에게 낸 상처 하나하나를 딛고 일어설 때마 다, 문자의 정신은 마치 짐을 얹고 또 얹고 그러는 동안 자기 속에서 그 짐을 이기는 영원한 힘을 이끌어낸 불사의 낙타 같았다. 그러난 한수는 문자의 주위 사람들이나 마찬가지로 그런 사실을 조 금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는 바보스러울 만크 착하다고 여겨지던 그 녀가 딱 한 번 <무서운 여자다> 하고 생각된 때가 있었다. 왜 그렇 게 생각되었는지 그 이유는 그 자신도 확실히 알지 못했다. 문자가 옥조를 낳은 지 한 달도 못 되어서였다. 그는 아내의 등을 떠밀어서 문자로부터 옥조를 빼앗아오게 했다. 아내와의 사이에 일남 일녀를 둔 그가 새삼스레 그 자식이 탐났을 리는 없었다. 그는 옥조 를 데려옴으로 해서, 문자를 영원히 자기 곁에 붙잡아둘 수 있으리라 고 계산했다. 데려온 핏덩이를 내려놓으면서 그의 아내가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세상에, 얼마나 변변치 않은 년이었으면 집 안을 그 꼴로 해놓고 산단 말이우. 미리 겁부터 줄려고 뭘 좀 때려부술까 해도 눈에 띄는 게 있어야지. 없다없다 해도 손바닥만한 경대조차 없는 여편네는 내 생전 처음이라니까" 한수의 아내는 말은 그렇게 했지 ? 기실은 문자의 살림이란 게 캐 비닛 하나뿐임을 보고 속으로 적이 안심했었다. 아무것도 없이 산다 고 늘상 남편으로부터 들어온 터이긴 해도 그녀는 설마 했었다. 왜냐 하면 남편이 광업소 소장으로 있었을 무렵, 봉투나 값진 선물을 가지 고 찾아오는 업자들이 문턱에 줄을 이었던만큼,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그쪽으로 얼마든지 빼돌릴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수의 아내는 남편 덕으로 뜻하지 않은 밍크나 악어백이나 보석 같은 것을 몸에 휘감게 될 때마다, 혹시 그년이 나보다 더 좋은 ?갖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치밀어올라 남편 속을 슬그머 니 떠보곤 했다. 그러다 한수는 광업소를 그만둔 뒤 자영해 보겠다고 중석광산을 하나 사들였다. 그리곤 지녔던 동부동산은 물론 집이며 선산까지 팔아 광산에 집어넣었다. 끼니거리가 없어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보석반지까지 팔아야 했을 때 한수의 아내는, 나만 이렇게 빈 털터리가 되는 게 아닐까, 그년은 여전히 몸에다 보석을 휘감고 있는 데 나만 거지꼴이 되는 게 아닐까 싶어 새삼스레 속이 지글지글 끓었 다. 올케에게 ?빌린 밍크와 악어백으로 치장하고, 용두동 개천가의 개 구멍만한 쪽문을 밀고 들어서, 한달음에 문자의 살림속을 읽고 난 그 녀는 공연히 가슴을 태웠다 생각하니 우습고 허전했다. 남편이 가져 다 주었음직한 것은 정말 아무것도 눈에 띄지 않았다. 한때 방방마다 놓아두었던 그 흔한 텔레비전 한 대도 없고 보면, 남편의 그녀에 대한 사랑이란 건 대수롭지 않은 게 분명했다. 그러자, 한수의 아내는 애엄마가 순순히 아기를 내놓더냐고 남편이 물어보자 매처럼 사납게 눈을 부릅떴다. "순순히 안 내놓음 지년이 별 수 있어요? 호적에도 못 오른 년이 새끼를 낳아놓고 할말 하겠다 고 들면 그게 되려 뻔뻔스럽지. 어쨌든 눈물 한 방울 안 흘리고 새끼 만 잠자코 들여다보더니 딱 한마디 합디다. 아기가 한밤중에 깨어서 우는 습관이 있으니 그럴 때는 숟갈로 보리차를 몇 모금 떠먹이라나 어찌라나" 한수는 그 얘기를 듣는 순간 아내에겐 들리지 않게 "하여간 맹추라 니까. 제 속으로 난 자식인데 그렇게 맥없이 뺏겨?" 하고 중얼거리다 가 단단한 쇠꼬챙이에 명치를 치받힌 듯 입을 다물었다. 갑자기 그 소리 없는 조용함이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그 무엇으로 그의 가슴에 와닿았던 것이다. 한수가 십 년 전 처음 문자의 자취방으로 드나들기 시작했었던 때는 한겨울이었다. 유난히도 눈이 잦았던 그해 겨울을 문자는 거의 지붕 위에서 살다시피 보냈다. 눈이 쌓인 채로 놔두면 그 물이 언제까지나 콘크리트 천장으로 스며들어 곳곳에서 낙수가 지곤 했다. 오르내릴 사닥다리도 변변치 않았고, 고압선이 길게 늘어져 있어 위험하기 짝이 없는데도, 문자는 부삽을 들고 날개가 달린 듯 지붕으로 오르내렸다. 식당을 한다는 주인집 내외가 비죽이 웃으며 대청마루에 선 채 구경삼아 쳐다보고 있거나 말거나, 그녀는 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마치 춤추듯 가볍게 눈을 퍼서 지붕 아래로 집어던졌다. 어쩌다 지나가던 행인 이 흙탕물이 튀었다고 화를 내면, 날으듯 뛰어내려 그의 바짓가랑이를 털어주며 만족할 때까지 몇 번이나 사과하고 나서 또다시 지붕으로 올라가곤 했다. 또한, 헛간이나 다름없는 문자의 부엌에는 수도가 없었기 때문에 안 집 마당에 있는 수도에서 일일이 물을 길어다 먹었다. 안집 마당으로 가자면 부엌 뒷문으로 나가서 높고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야 했다. 이 전의 세든 사람들에겐, 그 계단이 죽지 못해 오르내리는 굴욕의 사다리로 여겨졌었다. 그 가난한 여인들은 자신이 양손에 물바께쓰를 들 고 낑낑거리며 계단을 오르는데, 주인집 여자가 비죽이 웃으며 자기의 뒷모습을 주시하는 것이 무엇보다 싫었다. 그러나 똑같은 방을 빌려 사는 처지이면서도 문자는 그녀들과 전혀 달랐다. 그녀가 뒷문 앞에 나타날 때 보면, 무슨 좋은 일을 하다가 중단하고 나온 것처럼 항시 두 뺨이 발그레했다. 때로 그녀는 양손에 바께스를 든 것도 잊고 층계참에 서서 한참 동안씩 하늘을 쳐다보곤 했다. 그러고 난 뒤엔 두 뺨에 발그 레한 빛이 안에서 불을 켠 것처럼 더욱 짙어졌다. 그녀가 계단을 내려오는 모습은 마치 몸 속에 깃들어 있는 싱싱한 생명의 탄력이 음계를 밝고 있는 듯이 보였다. 그래서, 그 계단은, 그 위에 있는 아주 신비롭고 아름다운 세계를 그 녀 혼자만 누리기 위해, 외부로 나타난 부분을 일부로 조악하게 꾸며 논 것같이 보였다. 주인집과 그 집에 세들어 사는 여느 식구들은 문자가 새벽같이 층계참에 나와 매운 연기를 마셔가면서도 연탄화덕에다 신나게 부채질을 활락활락 해대며 때로는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는 광경을 종종 볼 수 있 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부엌의 아궁이에선 물이 솟았기 때문이다. 아궁이뿐만 아니라, 지붕이며 방고래를 고쳐달랠 만한대도 문자가 혼자 힘으로 잘 참아나가자, 주인집은 고마워하기는 커녕 오히려 그녀 에게 물세 불세까지도 터무니 없이 물리었다. 그래도 문자는 한마디 도 따지지 않고 달라는 대로 선선히 내주었다. 마치 큰 여유가 있어 그만한 일은 불문에 붙이는 것처럼. 때문에 한집에 세들어 사는 여인들은 문자의 살림형편이 겉보기보다 훨씬 알심 있을 거라고 추측했다. 어느 날 그녀들은 자기들끼리 짜고 불시에 문자를 찾아갔다. 방 안을 찬찬히 둘러본즉, 물이 스며든 천장 은 페인트칠이 일어나 너덜거렸고, 녹슨 손잡이가 달린 캐비닛 이외에 이렇다할 세간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들로서는 문자의 두 뺨에 서린 발그레한 홍조와 노래를 몸에 휘감고 있는 듯한 그 발랄한 생기 가 어디에서 연유하는지 더욱 몰라졌다. 그녀들은 문자가 수돗가에 나왔다가 떠나고 난 뒤에, 향기 좋은 꽃으로 가슴을 꾹 눌렸다가 뗀 것 같은 그 느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그중 누가 엄지손가락으로 돌았다는 시늉을 해 보이면 거기에 전적으로 동 의하는 폭소를 터트렸다. 그녀들은 이미 확인한 바와 같이 문자는 남다른 무엇을 소유했던 게 아니었다. 그녀로선 무엇을 하든 그 일을 하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한 것뿐이었다. 콩나물을 다듬든, 연탄불을 피우든, 지붕 위의 눈을 치우든. 그를 생각하노라면 어딘가 높은 곳에 등불을 걸어둔 것처럼 마음 구석구석이 따스해지고, 밝아오는 것을 느꼈다. 그 따스함과 밝은 빛이 몸 밖으로 스며나가 뺨을 물들이고, 살에 생기가 넘치게 하는 것을 그녀 자신은 오히려 깨닫지 못했다. 한수가 그녀에게 오는 것은 단지 일요일 밤뿐이었지만, 그는 항시 그녀의 시렁 위에 걸려 있는 등불이나 다름없었다. 시장에선 물건을 깎다가도 그녀는 <그가 만약 이 사실을 안다면> 하고 깎는 일을 그만 두었고, 남과 다툴 뻔하다가도 그를 떠올리면 분노가 촉촉하게 가라 앉았다. 이렇게 해서 월요일, 화요일...... 토요일을 보내는 사이에 그는 그녀 의 존재 자체를 조금씩 연금시켜, 이윽고 일요일이 되었을 땐 그녀의 손길이 닿기만 해도 닿는 것은 무엇이든지 금빛 물이 들었다. 문자는 그가 미처 문을 두드리기도 전에 이미 그의 발걸음 소리를 알아듣고 미리 나가서 그를 맞아들였다. 그녀가 그의 옷을 벗기면 그 옷이 금빛으로 물들었고, 양말을 벗기면 양말이 그러했다. 뜨거운 물 이 담긴 대야를 가져와 그의 발을 씻기면 그 발 역시 금빛이 났다. 그녀가 그를 위해 마련한 저녁상은, 가난한 자가 일주일 내내 거친 솔과 젖은 걸레로 마룻바닥을 힘들여 닦아서 번 돈으로 성전 앞에 켤 양초를 사는 것같이 마련된 것이었다. 한수는 그녀가 살코기를 집어줄 때마다 입을 딱 벌려 받아먹기만 할 뿐 자기도 그녀의 입에 그 고기를 먹여주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한수의 마음은 무디고 이기적이어서 온 방안에 가득 찬 금빛 을 보지 못했고, 가만히 있어도 그 침묵이 노래임을 알지 못했다. 심지어는 그녀의 몸을 만지면서도 잘 익은 과육에서 나는 것과 같은 향기가 자기 손가락에 묻어나는 것도 몰랐다. 그는 마치 돈 없는 주정뱅이가 어쩌다가 값싼 술집을 발견하고도 긴가민가하여 자꾸 주머니 속의 가진 돈을 헤아려보듯이, 문자가 과연 자기가 줄 수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고 자기와 살아줄 것인지를 알고 자 끊임없이 탐색의 눈초리를 번득였다. 그는 이미 아내와 자식들이 있었으므로, 그가 문자와 더불어 지낼 수 있는 시간은 그가 빼내어도 그의 아내가 눈치채지 못할 만큼의 시간에 한정되어 있었다. 그는 또 한 여당 소속 국회의원의 비서라는 그럴싸한 직업을 가지고 있었지만 수입은 보잘것없었다. 그래서 그는 문자에게 생활비 같은 것을 보태 줄 처지가 못 되었다. 그는 문자로부터 어떤 요구도 받은 적이 없으면서, 항시 이 여자가 내가 줄 수 있는 한도 밖의 것을 요구해 오면 어쩌나 하고 불안해 했 다. 그는 문자가 화장도 하지 않고, 모양도 내지 않고, 집 안에 값나 가는 물건을 사놓으려 하지도 않는 걸로 봐서, 욕심 없는 성격이라는 것을 간파했으면서도 여전히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그가 모시고 있던 K의원이 장관으로 발탁되었고, 그의 도움으로 광산과 출신의 한수는 반관반민의 동동광업소 소장으로 임명 되었다. 그의 수입은 이제 문자에게 정식으로 딴살림을 시킬 수 있을 만큼 풍족해졌다. 그는 멋진 새 집을 사서 이사를 했고, 그의 아내와 자식 들은 좋은 옷을 입었고, 가만히 앉아 심부름하는 사람들의 시중을 받았고, 과일과 케이크는 미처 먹지 못해 곰팡이가 필 정도로 지천이었 다. 그럼에도 그는 문자에겐 아무것도 나누어주지 않았다. 사과 하나, 귤 하나도. 이따금 그는 문자에게 가져가라고 무심히 과일바구니 하 나를 집어 들었다가도 도로 내려놓았다. 일단 그녀에게 무엇을 주기 시작하면, 혹시나 끝없이 요구의 손길을 뻗쳐오지 않을까 겁이 났다. 문자는 여전히 그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주인집에서 방값 을 올리자 그녀는 자기 힘으로 구해 보다가 끝내는 방을 옮겼다. 그 사이 물가가 많이 올라서 문자가 그에게 예전과 같은 저녁상을 차려내 기 위해서는 자기가 일주일 살 몫에서 더 많이 쪼개내야 했다. 그녀 는 버스를 두 번 타는 대신 한 번만 타고 나머지는 걸었다. 그리고 점심도 라면으로 떼웠다. 반대로 한수의 몸에서는 날이 갈수록 기름이 번지르하게 흘렀다. 그는 매번 올 때마다 구두를 갈아 신었고, 와이셔츠나 넥타이와 카프 스버튼과 내의까지도 달라졌다. 양복도 가지각색으로 늘어났다. 어느 날 문자는 시계를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그의 내의자락을 뒤 에서 꽉 움켜쥐며 "가지 말아요. 오늘 밤만은 함께 있어줘요" 하고 등 에 얼굴을 묻었다. 그러나 이내 잡은 옷자락을 맥없이 놓아주는 순간, 울컥 울음이 넘어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예전에는 문자의 손길이 닿은 것마다 금빛으로 물들었던 것이 이제는 그녀의 가슴을 미어지게 할 때가 많았다. 그녀는 그에게 옷을 입혀주려고 옷걸이에서 양복을 걷어내다 그 속주머니에 찔려진 두툼한 돈뭉치를 보고도 목이 메였고, 보자기에 싸서 아랫목에 묻어두었던 그의 구두를 꺼내다가 밑창에 새 겨진 고급상표를 보고도 가슴이 미워졌다. 그녀의 맘속에서는 해일이 일고, 번개가 치고, 폭풍이 몰아치는 종말 같은 나날이 계속되었다. 아무도 없는 강가나 깊은 산속에 가서 목놓아 울고만 싶은 슬픔이 그녀의 두 뺨에서 발그레한 홍조를 차츰차츰 스러지게 했다. 또다시 집값이 올라 하루 종일 방을 구하러 다니다 돌아오던 길에, 문자는 소주 두 병을 샀다. 안주도 없이 단숨에 소주 두 병을 비우고 나서 그녀는 의식을 잃었다. 눈을 떴을 때 그녀는 자기가 눈부신 아 침 햇살과 끈적거리는 오물 속에 누워 있음을 발견했다. 새로이 눈물이 괴어올라 눈앞이 어룽졌다.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그때 그녀 속에서 낙타 한 마리가 벌떡 몸을 일으켜세우며 외쳤다. "고통이여, 어서 나를 찔러라. 너의 무자비한 칼날이 나를 갈가리 찢어도 나는 산다. 다리로 설 수 없으면 몸통으로라도, 몸통이 없으면 모가지만으로라도. 지금보다 더한 고통 속에 나를 세워놓더라도 나는 결코 항복하지 않을 거야. 그가 나에게 준 고통을 나는 철저히 그를 사랑함으로써 복수할 테다. 나는 어디도 가지 않고 이 한자리에서 주 어진 그대로를 가지고도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테야. 그래, 그에 게뿐만 아니라, 내게 이런 운명을 마련해 놓고 내가 못 견디어 신음하면 자비를 베풀려고 기다리고 있는 신에게도 나는 멋지게 복수할거야!" 회사에도 못 나가고 그녀는 이틀을 꼬박 누워 앓았다. 그 이튿날은 일요일이었다. 문자는 일어나서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같이 그를 맞기 위해 목욕을 하고, 시장에 다녀와서 은행알을 깠다. 그날 저녁 그의 넥타이를 받아 옷걸이에 걸다가 문자는 그것에 꽃혀 있는 진주 넥타이핀을 발견했다. 그러나 그녀의 가슴은 이전처럼 미어지지 않았다. 마침내 그녀의 맘속으로부터 그가 가진 모든 것이 무 관해졌던 것이다. 그가 누리는 모든 것이 그녀와 무관해졌다. 문자는 오로지 곁에서 담담한 맘으로 지켜볼 뿐이었다. 그의 끝없는 욕망이 그의 집 문전에 줄을 잇는 업자들의 선물상자와 돈봉투를 딛고 자꾸자꾸 높아지는 것을. 어느 날 새벽에 라디오와 TV에서는 베토벤의 영웅교향곡 2악장을 끝없이 되풀이하여 들려주었다. 계엄령이 선포되었고 국회와 내각이 해체되었다. 그런 뒤 두 달도 못 되어서였다. 한수는 수염이 텁수룩 하고 초췌해진 얼굴로 비틀거리며 문자에게 나타났다. 몸을 가누지 못할만큼 취해 방바닥에 퍼지르고 누운 그에게서 문자는 하나씩 옷을 벗겨 냈다. 갑자기 그가 문자의 옷자락을 움켜쥐며 목쉰 소리로 울먹 였다. "난 이제 아무것도 아냐, 우리집 문전엔 인적이 끊겼어. 그렇지만 너까지 날 괄시하면 죽여버릴 테다" 이모가 목욕중이었으므로 문자는 거실에 앉아 기다려야 했다. 그녀 가 앉아 있는 소파는 보드라운 깃방석 같았고, 아라비아풍의 두툼한 양탄자가 깔려 있어 발밑도 포근했다. 모든 것이 포근하고 쾌적했다. 천장에서부터 내려뜨려진 하얀 망사 커튼 너머로 뜰의 나무들이 세 찬 바람에 휘청거리는 것이 보였다. 이곳서는 추운 바깥 날씨조차도 아프고 시린 것이 아니라 쾌적하고 달콤하게 느껴졌다. 음산한 하늘 에서 차츰 먹빛이 배어났다. 욕실에서 타일바닥을 때리는 상쾌한 물줄기 소리가 들려왔다. 문자 는 갑자기 등이 시리고 몸이 저렸다. 그러한 자기자신에게 그녀는 이렇게 타일렀다. <약한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보드라운 소파와 양탄자와 금칠을 한 벽난로와 비싼 그림과 쾌적한 침대 위에 세운다. 그런 뒤엔 그 물질로해서 알게 된 쾌적한 맛에 길들여져 그들은 이내 물질의 노예가 된 다. 그들의 갈망은 끝없이 쓰다듬는 손길에 의해서 잠이 잘 잔 말의 갈기와 같다. 하지만 내 정신의 갈기는 만족을 모르 "저어......" 셈을 치르려던 문자는 상점 주인의 망설이는 얼굴을 쳐다보았다. "저어, 아까 아저씨가 들어가시면서 오징어 한 마리하고 고량주 두 병을 가지고 가셨어요" "네, 알겠어요. 그건 얼마죠?" "가만 있거라 보자, 천팔백 원이군요" 찬거리를 들고 문자는 상점에서 나왔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들 의 노란 창문들이 그녀로 하여금 한층 더 지치고 피곤하여 쉬고 싶은 생각을 간절하게 했다. 그러나 한수가 와 있으니 쉴 수도 없으리라. 그는 요즘들어 부쩍 허물어진 모습에 주사까지 늘고 있었다. 문자는 높교 가파른 언덕을 올라갔다. 가는 도중에 그녀는 고목나무 아래서 다리를 쉬었다. 언제나 다름없이 신선한 영감이 가슴을 뿌듯하게 차올랐다. 그 고목은 몸뚱어리가 온전치 못한 불구의 몸임에도 늠름한 키에 풍 성한 가지를 지니고 있었다. 그의 가지 하나하나가 모두 하늘을 어루만지려는 갈망의 손으로 보였다. 저토록 높은 데까지 갈망의 손을 뻗치기 위해서는 아마도 그의 뿌리는 자기 키의 몇 배나 깊이 땅 속으로 더듬어 들어갔을 것이다. 생명수를 찾아 부단히, 차고 견고한 흙 속으 로 하얀 의지를 뻗쳤을 나무의 뿌리가, 자신의 발밑에 맞닿아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문자는 시린 삶의 아픔이 가시는 듯한 위안을 느꼈다. 문자는 미처 집에 닿기도 전에 대문 안에서 얼굴만 내밀고 자기를 기다리고 있던 주인집 여자를 만났다. 가슴이 철렁했다. 역시 그랬 다. "아유 속상해 죽겠어. 색시 저거 좀 봐요. 저기다 또 오줌을 누었 어요. 개도 그렇진 못할진대, 남의 집 얼굴이나 다름없는 문간에다 찌 린내를 진동치게 해놓다니. 우리는 둘째치고 담벼락 주인이 알고 좇 아올까 봐 무섭군요" "정말 죄숑해요, 아주머니. 지금 당장 씻어내겠어요" 문자는 부엌 겸 자기 방 출입문으로 들어가서 찬거리랑 가방을 내려 놓고 대야에 물을 퍼담았다. 주인집 여자는 여전히 눈꼬리에 독을 묻 혀 가지고 서서 문자를 흘겨보았다. 지칠 대로 지친 육체에 굴욕의 비수가 꽂히자 감미로운 동요가 일어 났다. <고통의 사닥다리를 오르는 일이 다 쓸데없는 짓이라면? 이 길의 끝에 아무것도 없다면? 모든 것이 다 조작된 의미라면? 아픔과 고통 의 끝이 또 다른 아픔과 고통의 연속으로 이어진다면?......> 그럼에도 그녀의 팔은 오랜 동안 낙타의 지칠 줄 모르는 다리가 되 어왔던 까닭에 걸레질을 멈추지 않았다. 문자가 담장을 말끔히 씻어놓고 안으로 들어가려니, 주인집 여자가 그제서야 다소 누그러진 음성으로 그녀를 붙잡아세웠다. "색시, 잠깐만 기다려요. 편지 온 게 있어요" 잠시 후에 주인집 여자는 푸른 항공엽서 하나를 들고 나왔다. 그것 을 건네주며 그 여자는 밑도 끝도 없이 쌕 웃었다. 그 웃음은 또다시 문자의 가슴을 철러하게 했다. 틀림없었다. "이사 온 지 육 개월도 안 됐는데 이런 말 하기가 뭣하지만 이해해 줘요. 痢?아들이 방을 따로 쓰겠다고 자꾸 보채는구려. 복덕방비는 이쪽에서 물어줄 테니 다른 데 방을 좀 봐보려우?" "네, 알겠어요" 문자는 선선히 대답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발등이 터진 한수의 헌 구두를 집어 한쪽으로 가지런히 세워놓고 방문을 열었다. 한수는 꼼 아떨어져 자는 중이었다. 빈 고량주 병이 머리맡에 나뒹굴었다. 그의 머리는 텁수루룩하게 자라 귀를 덮었고, 와이셔츠 깃은 때가 절어 있 었다. 새우처럼 등을 구부리고 자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동안, 문자 에겐 이제야말로 내가 이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손에 들려진 편지 생각이 난 것은 그 다음 일이었다. 편지는 뜻밖 에도 미국에 간 오빠로부터 온 것이었다. 문자는 저녁을 지으려는 생 각이 앞서 편지를 대강대강 읽었다. "이건 무슨 편지야" 밥상을 차리는데 방 안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에게서 온 거에요" "내용이 뭔데?" "날 보고 들어오래요. 자기가 하는 슈퍼마켓이 너무 잘 돼서 손이 모자란대요" "쳇, 지금까지 소식 한 장 없다가 겨우 손이 모자라니 와서 도와달 라구? 당장 회답을 써보내, 웃기지 말라구. 물주만 만나봐, 그까짓 슈퍼마켓 같은 건 열 개라도 차릴 수 있어" 탁, 하고 성냥불 긋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가 짜증이 난 것은 편지 의 내용 때문이라기보다, 돈을 구했는지 못 구했는지 빨리 말해 주지 않기 때문이라고 헤아려졌다. 밥상을 차리다 말고 문자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한수는 핏발이 선 눈길로 얼른 모로 빗겼다. 문자는 가방에서 돈을 꺼내 그에게 내밀었 다. 그는 돈을 받는 즉시 담배를 신문지 귀퉁이에 눌러 끄고 벌떡 일 어났다. "저녁 다 됐어요" "지금 몇 신데 저녁타령이야. 다 늦게 들어와가지구" 문자는 잠자코 그에게 윗도리와 외투를 입혀주었다. 순간순간 그의 모질고 이기적인 성격을 엿볼 때마다 문자는 맘속으론 울고 입술로는 웃었다. 그가 단추를 채우는 동안 문자는 먼저 부엌으로 나와서 그가 신기좋 게 구두를 가지런히, 그리고 약간 벌려놓아 주었다. 밥을 푸다 만 밥 솥에서 서려오는 김을 보고 문득 쓰라린 비애를 느꼈으나 그녀는 조용 히 웃었다. 한수는 문자가 문 밖에서 배웅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곧장 뚜걱 뚜걱 계단 아래로 내려갔다. 그는 언덕을 내려가 잠시 후엔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문자에겐 그가 자기 시야에서 끝도없이 있을 뿐인것으로 느 껴졌다. 그는 이미 한 남자라기보다, 그녀에게 더 한층 큰 시련을 주 기 위해 더 높은 곳으로 멀어지는 신의 등불처럼 여겨졌다. 그리하여 그녀는 그것에 도달하고픈 열렬한 갈망으로 온몸이 또다시 갈기처럼 펄럭였다.
--- 문단나눔이 없는 글은 역시 읽기 힘들다;;; http://www.info.go.kr 에 가입하시면 전자책으로 읽을수 있음.
이 책은 자연과 인간을 생각하는 31편의 아름다운 창작 이야기로 구성되었습니다. 지은이가 동화작가로 등단하여 20년 활동하면서 발표한 동화 중 어린이들의 올바른 인성형성에 도움을 줄만한 주옥같은 동화를 한권으로 엮은 것입니다. 지은이는 이 책을 펴내면서 한번 읽고 버리는 동화책 보다 두고두고 아이 어른 구별 없이 잔잔한 감동과 삶의 지혜를 나눌 수 있고, 인간과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의 씨앗이 뿌려지기를 바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배홍태 선생님은 1947년 경남 진양에서 태어나 부산교대를 졸업하였습니다. 1985년 [소년]지에 동화 [왕잠자리]와 [산골소년 석이]로 돌아가신 박홍근 선생님의 추천을 받아 등단하였고, 이후 자연과 동심을 주제로 한 많은 아름다운 동화를 발표하였습니다. 1992년 제14회 [부산아동문학상] 본상을 수상하였고, 현재 부산광역시 동래교육청 학무국장으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이책이 어떤지는 나로서는 판단할수 없다. 누군가에게는 좋은책이 될수도 있겠지. 하지만 이 작은 도서실에 같은책이 스무권이나 있을 필요는 없다고 본다.
지구환경과학 우량도서'환경부 선정 우수환경도서 제4회 녹색문학상 수상작' 이라고 붉은 박스안에 쓰인 글씨가 붙어있고 한국서적공사에서 발행된 시리즈다. 그중 한권의 제목은 '신나는 환경여행' 그 책의 작가는 성균관대학교 도서관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의 솔로몬대학에서 문예창작과 석사과정을 밟았고 월간 아동문학 신인상 동화에 당선됬다. 그외 여러 아동문학회에서 주는상을 수상하고 현재 여러 기독교,어린이관련협회의 회원이며 한편의 동화시집과 한편의 동화집, 여러권의 어린이 책을 썻다.
나는 편당 10권가까이 있는 녹색문고시리즈를 한권씩만 남겨두고 문이있는 서가-서가에 들어가는 기준은 오래되었거나, 이용되지 않는것이라고 한다-에 집어넣어버리고 서가에 들어가는 기준에 '아무도 보지 않을것 같은 책'과'지나치게 복본이 많은책'을 추가시켰다.그리고 그 서가에서 80일간의 세계일주의 만화판과 페스트푸드의 폐해를 알기쉽게 설명한 책, 동물농장의 어린이판과 허풍선이 남작의 모험을 찾아내어 꺼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