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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예수전
4월 5일부터 세 번째 나의 예수전 강의를 시작한다. 이번엔 어떤 이들이 배우러 와서 다시 나를 가르칠까..
지난번 예수전 2기 수강생들의 나의 예수전을 올렸는데, 이건 1기들의 것이다. 그들은 커뮤니티를 만들어 함께 소통하면서, 이번 공연에도 와서 궂은 일들을 도맡아했다. 공연 중이나 나중에 주최측은 아닌 듯한데 뭔가 부지런히 나르고 치우고 하는 사람들을 봤다면 바로 그들이다.
배호남의 예수전
1. 나
내 이름은 배호남이다. 하늘 호[昊]에 사내 남[男]을 쓴다. 내 이름은 기독교적이다. 하늘에서 내려주신 아들. 아버지는 내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
내 할아버지는 목사였다. 그는 한국전쟁 때 인민재판에서 순교했다. 내 집안은 기독교 순교자 집안이다. 당연하게도 집안 어른들
중에는 집사, 권사, 장로가 여러 명이다. 둘째 작은 아버지는 가업(?)을 이어받아 목사이다. 중학교 무렵까지, 나는 3대째
가업을 이어 받을 기대주였다. 그리고 내 스스로 그걸 원하기도 했다. 열다섯 살 무렵까지 나는 목회자가 되기를 간절히 원했다.
그런데 고교로 진학하면서, 나는 목회자의 꿈을 접고, 나아가 기독교라는 종교를 버렸다. 그 과정에는 둘째 작은 아버지가 겪었던
고난이 내게 준 영향이 컸다.
둘째 작은 아버지는 해방신학 계열의 목사였다. 목사 안수 후 십 년 가까이 개척 교회를 옮겨 다녔다. 그러다가 88년, 전남
무안군의 한 교회의 담임 목사직을 맡게 되었다. 교인 수가 500명이 넘는 꽤 큰 교회였다. 그것은 일종의 영전이기보다는, 그가
노력한 10년 세월의 당연한 결과라고 나는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그는 그 교회의 목사직을 오래 맡지
못했다. 작은 아버지의 설교는 종종 너무 진보적이었으며, 청년부의 젊은 신도들과 시국 토론을 즐겼고, 때때로 그들과 함께 술도
한 두 잔 씩 했던 것이다. 결국 보수적인 장로들과 집사들의 결의로 그는 교회에서 쫓겨났다. 교회에서 쫓겨난 뒤, 그는 충격으로
인해 약간의 말더듬 증상이 생겼다. 말더듬는 목사라니. 목회자로서는 치명적인 결함을 갖게 된 것이다. 그 후로 그는 다시 개척
교회로 돌아가 목회를 보았지만, 예전만큼의 신앙을 유지하지 못하고 자주 실의에 빠졌다. 사 년 전부터 그는 목회를 접고 부동산
중개업을 한다.
당시 중3이었던 나로서는, 삼촌의 고난이 큰 충격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그를 존경했다. 그는 의지가 강하고 선한 심성을
지닌, 천성이 목회자인 사람이다. 어렸던 나는 이 불의를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당신의 종이 고난받을 때, 하나님은 대체
어디에 계셨습니까? 당신은 어디에 있습니까?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없었고, 그래서 여호와를 떠났다. 지금까지 나는
그 결정에 대해서 추호의 후회도 없다. 어떤 교인들은 내게 욥의 고난을 상기시키기도 했다. 욥처럼 하나님이 주신 고난을 믿음으로
참고 이겨내면, 결국은 하나님께서 복을 내려 주시리라고 말이다. 그러나 애초에 욥이 고난받은 이유도 사탄의 꼬임에 넘어간
여호와의 히스테리 아니었던가. 피조물의 믿음을 걸고 악마와 도박하는 그런 신 따위, 내게는 필요 없다.
대학에 진학하고 成人이 되면서 나는 유물론을 내 세계관으로 받아들였다. 유물론자로서 나는 神의 존재를 믿지 않으며, 내세 또한
믿지 않는다. 우리의 하늘 위로는 천국도 없고 땅 밑으로는 지옥도 없다. 내세를 믿지 않으므로 나는 구원을 바라지 않는다.
종교로서의 기독교는 내게 더 이상 아무 의미도 없다. 내게 의미 있는 것은 지금 여기 이 땅의 현실뿐이다. 내 아버지의 말을
빌리자면, 나는 “집 떠나온 탕아”다.
종교로서의 기독교를 버린 내게, 그러나 예수는 등 돌릴 수 없는 의미로 남아있어 왔다. 예수의 행적과 말씀은 늘 내 삶을
간섭했다. 도대체 예수는 누구인가? 신앙의 대상이 아닌 예수는 내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나는
<나의 예수전>을 수강했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2. 예수
예수는 나사렛 사람으로,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이다. 그는 2005년 전 베들레헴에서
태어나, 서른에 광야로 나와 말씀을 전하다, 서른셋에 십자가 위에서 죽었다. 그는 메시아인가? 적어도 유대민족에게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내게도, 예수는 메시아가 아니다.
내게 있어 예수는 ‘기쁜 소식[福音]을 전하는 자’이다. 그가 전하는 기쁜 소식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하나님의 나라를 지금의 기독교인들이 믿듯이 내세에 세우지는 않았다. 예수는 그가 살아가던 2000년 전
세상의 땅 위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려 했다. 그가 믿었던 하나님의 나라란 어떤 것인가.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형제자매로
살아가는 나라이다. 아이들이 사자들과 뛰놀고, 독사굴에 손 넣고 장난쳐도 물지 않는 나라(사자와 독사굴은 인간 세상에 대한
명백한 비유다). 예수는 그가 믿는 하나님의 나라를 말씀으로 전하고 몸으로 실천했다. 그리고 그 말씀과 실천 덕택에, 그는
서른셋에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
니체는 『반그리스도』에서 예수를 한 사람의 데카당으로 보았다. 니체에게 있어 데카당이란 ‘사회의 질서에 反하는 자신의 신념을
위해 죽음을 택하는 자’이다. 헬레니즘의 질서에 반하는 데카당으로 그리스 민족에게 소크라테스가 있듯이, 헤브라이즘의 질서에
반하는 데카당으로 유대 민족에게는 예수가 있다. 예수는 금기와 허위로 가득 찬 유대교의 교리를 반대했다. 그가 믿었던 하나님의
나라는 교리를 넘어선 곳에 있었다.
예수를 십자가에서 끌어내리고 그의 머리 뒤에 걸린 휘황한 후광을 벗겨내고 보면, 그는 한 사람의 초라한 나사렛 청년에 불과하다.
광야로 나오기 전까지 그는 목수였다. 예수는 그 초라한 청년의 모습으로 세상에 나와, 그 모습을 통해 말씀을 전하고, 그 모습
그대로 십자가에서 죽었다.
예수는 우리를 저 머나먼 천국으로 인도하는 목자가 아니다. 그리고 인간은 예수를 통해 죄를 회개해야만 하는 죄인들이 아니다.
나는 집을 떠나왔을지는 모르나 탕아가 아니고, 길을 잃었을지는 모르나 어린양이 아니다. 나는 내 어깨 위에 놓인 수고로운 짐을
예수에게 부려놓기 위해 그를 만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내가 믿는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지표이자 동반자로서 예수를 만나려
한다. 그렇다면 지표로서의 예수, 신앙의 대상인 절대자가 아닌 동반자로서의 예수가 내게 지니는 의미는 무엇인가?
3. 나와 예수
기독교를 모태신앙으로 삼았던 사람에게 기독교를 버린다는 의미는 단순히 교회에 나가지
않는다는 것과는 다르다. 그것은 여태껏 자신이 믿어 왔던 세상을 부수는 일이며, 아버지의 법에 저항하는 일이다(나는 지금도
고향에 가게 되면 “교회에 나가지 않으면 호적에서 빼버리겠다”는 협박을 받는다).
기독교인이 아닌 나에게 예수가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타인에 대한 사랑이다. 예수는 사랑이 필요하나 사랑받지 못했던
사람들을 사랑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 사람들을 사랑받지 못하게 만드는 모든 것들과 싸웠다. 예수의 사랑은 대상 없는 공허한
추상적 관념이 아니다. 그는 인류 전체를 긍휼히 여기는 위대한 구원자가 아니었다. 예수는 그가 살던 세상에서 사랑받을 가치가
없다고 여겨지던 사람들만을 사랑했고, 존중받을 가치가 없다고 여겨지던 사람들만을 존중했다. 예수의 분노는 언제나 그가 행하고자
했던 사랑과 존중을 불가능하게 하는 것들에게로만 향했다.
‘진보’란 보다 나은 세상을 향한 변혁이다. 진보를 바라는 자는 그가 몸담고 있는 세상이 왜, 그리고 어떻게 잘못되어 있는가를
반드시 알아야만 한다. 내가 살아가는 21세기의 세상은 전지구적 자본주의 사회다. 자본주의가 우리에게 약속하는 것은 개인의
욕망을 무제한으로 실현할 수 있는 자유다. 이 자유의 실현을 위해 자본주의는 인간의 모든 가치를 교환가치로 바꾼다. 결국
자본주의 사회의 자유란 모든 것을 돈으로 살 수 있는 가능성에 다름 아니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이기심에 삼투하는 방식으로
확산된다. 자신의 욕망을 최대한으로 실현하는 것이 최선의 가치라고 가르쳐지는 사회. 자본주의적 자유는 평등과는 이율배반의
적대관계에 있다. 자본주의 사회는, 그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네 욕망을 실현할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평등을 헌신짝처럼
버려라’라고 속삭이는 사회다. 그러나 한 사회가 구현할 수 있는 행복의 최대치란 그 사회의 물적 토대의 최대치에 비례한다.
누군가가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덜 행복해지거나, 심지어는 더 불행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인류의 이상향은 사회적 공동체 속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공동체만이 ‘인간다움’이 발현하는 유일한 장소이기 때문이다(이것이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명제의 眞意다). 인간이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타인에 대한 배려가 필수적이다.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에서 “현존재가 세계 내에서 다른 현존재와 관계 맺는 방식은 배려다”라고 썼다. 이때의 ‘배려(Sorge)’란
무슨 철학적으로 난해한 심급을 가진 전문용어가 아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단어 그대로의 의미로 ‘자신보다 남을 먼저
생각함’이다. 이 일상적인 단어가 그러나 타인과 관계 맺는 우리의 일상적인 태도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 하이데거의
난해한 저작은 배려가 사라진 사회에 배려의 철학적 토대를 마련하기 위한 지난한 작업이었다.
예수가 이러한 배려의 밑바탕에 두었던 것이 바로 타인에 대한 사랑이었다고 나는 믿는다. 또한 예수가 믿고 바라던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의 땅에서 인간의 손으로 이룬 공동체적 이상향이라고 나는 믿는다. 근대의 모든 이념은 인간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했으나,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까지 발전하지는 못하였다. 인간의 공동체적 이상향을 위한 정신적 토대로서의 타인에 대한 사랑. 이것이
기독교를 버린 지금까지도 내게 여전히 영향을 미치는 예수의 의미이다.
권향미의 예수전
예수에대해서한번도생각해본적이없었던,
예수말고는요한이라는이름이나들어보았을까말까하는저는
어쩌면예수전을듣는데에가장적합한사람이아니었을까생각합니다.지금생각해보니..^^
정말대한민국을살아가면서교회한번안나가본사람이어디있을까마는,
그유명한성경책한번펼쳐보지않은저는,
김규항씨가하는강의라는것만으로선뜻
제생활형편으로는분명사치라고할만한강의를신청부터하고보았습니다.
늘야근에허덕이며,휴일을미리정할수도없는직장생활을하는봉급생활자로서,
매주화요일7시에전철역에서한참을걸어야만도착하는강의실에
매번참석하기란쉽지가않았습니다.
하지만,첫강의를놓치고두번째강의를듣고서저는,
제가제형편생각하지않고덥썩신청부터하고보았던강의가
제가살아오면서했던가장큰고민을즐겁게받아들이게해주리라는것을
느낄수있었습니다.
"가난해도행복할수있을까?"
주근무지가강남인근지역의백화점인저는,
아마도정신을바짝차리지않으면금새그요상한분위기에휩쓸려
명품이나탐내는그런사람으로살기쉽상이었을겁니다.
제가김규항님을또그를통해,
예수의삶을알게된것은얼마나다행인지요..
예수가가장밑바닥의삶들을가장편애했다는사실이,
가장힘겨운상황에처해있는사람을가장위했다는사실이
저에게는실로가장큰충격으로다가왔습니다.
겉모습으로돈이있어보이는사람과아닌사람을구분해
차별적으로대하고,
지하철택배를하는노인들과장애인을차별대우하는
백화점의잘차려입은직원들을보면서,
내가사는사회는왜이런가..
고민했습니다.
늘성경책도없이,그것을프린트해갈여유도없이종종걸음치다보니,
어느덧강의가끝나버렸습니다.
차분히다시읽어가며,
나의예수전을완성하고또지금과는다르게살아야겠습니다.
예수전강의를들었던것은분명그시작일테구요.
오늘뒤늦게김규항님의예수이야기와마가복음을이면지에출력하며
되뇌어봅니다.
지금예수를읽는이유를요.
안상평의 예수전
직장생활 3년 만에 나는 온통 나 자신이 뒤죽박죽 이라고 느꼈다. 직장생활의 무의미와 스트레스를 견딜 수가 없었다. 회사에
출근하면 세상은 온통 잿빛이었다. 돈과 영혼을 맞바꾸러 직장에 다닌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 직장생활의 의미를 철저히
부정하면서도 또 한편으론 열심히 재테크 책을 찾아 읽었다. 생활의 중심엔 은행잔고가 있었다. 그러니 차츰 책을 펴보고,
사회단체에도 참여하는 것도 시들했다. 무슨 의미가 있는가 싶었다. "어차피 돈 벌러 다니는데, 돈 모으는 게 현명한거 아닌가.
빨리 모아 이 생활 청산해야지" 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서 내가 괴물이 되어 간다고 느꼈다.
삶의 의미를 회복하고 싶었다. 진실하고 소박하게 살고 싶었다. 내 삶의 좌표가 어느 순간 사라지고, 허허벌판에 홀로 남겨진 것 같았다. 이제 어디서 좌표를 찾나, 아니 내게 좌표가 있기는 했나, 좌표를 찾아 나설용기도, 능력도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당연히 허울좋던 사회의식은 외피만 남았다. 술자리에서나 사회의식을 소비하며, 친구들에게 화풀이를 해댔다. 매일 남을 대하는 마음에 날이 서있고, 눈은 퀭해졌다.
이즈음, 처음으로 종교라는 것을 생각했다. 그것이 나 같이 괴물이 되어가는 인간에게 온전한 삶을 회복시켜줄 지도 모른다는 희망과 함께.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고, 김규항님의 블로그를 알게 되었다. 난 그곳에서 예수님을 처음 만났다.
내게 예수님의 삶은 가장 먼저 ‘정의를 실현하는 삶’으로 다가온다. 정의는 진리이기도, 평등이기도 한 것 같은데, 아무튼
그 길의 요체는 ‘나의 이웃이 내 몸’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내가 귀중한 만큼 남도 존귀하며, 그 사이에 어떠한 차이도
없다’는 깨우침. 이 깨우침 가운데 정의, 진리를 거스르는 어떠한 것도 용납될 수 없다는 철저한 투쟁의 태도가 함께한다.
나는 이런 태도가 굉장한 것이라고 느꼈다. 다른 설명이 필요 없이 너무나 간명했다. 이제껏 어떤 이념이나 주의로부터 나온 장황한
‘정의’의 개념에 익숙하던 내게 그런 예수님의 말씀은 더욱 힘있는 진리로 느껴졌다. 내 이웃이 겪는 고통과 편견과 불의가 내
몸이 당하는 고통으로 느껴지는 순간, 나를 보호하기 위해 내가 하는 저항이야 말로 아무런 설명이 필요 없는 너무나 정당한 행위가
아닌가 말이다.
또 예수님의 정의에는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한 ‘징벌’ 대신, ‘사랑과 연민’이 넘쳐난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러면서도 그 ‘사랑’은 ‘부정의’를 솎아내는 눈을 전혀 흐리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러한 ‘사랑과 연민’으로 인해 ‘정의’로 향하는 진실된 마음이 더욱 강력해 질 수 있다고 느껴졌다. 정의와 부정의를 정확히 분별하되, 그 분별함의 원천에 부정의에 대한 사랑이 넘쳐난다니. 감동이었다.
어떻게 그런 것이 가능했을까? 예수님은 어떻게 그런 신념을 키우고 또 끝끝내지켜낼 수 있었을까? 예수님은 그러기 위해 언제나 진실하게 고뇌하셨던 것 같다. 언제나 틈틈이 하나님께 기도하셨던 같다. 오늘날 말로 하면 시간날 때 마다 묵상하고, 명상하고 또 성찰하셨다. 성찰의 대상은 언제나 앞으로 가야할 길-‘정의/진리’이었을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이 나약한 존재임을 철저히 인정하고, 하느님께 언제나 ‘남을 가장 존귀한 대상’으로 바라볼 수있도록 해 달라고, 그 길에 처할 어떤 두려움도 이겨내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지 않았을까. 이런 예수님의 성찰의 과정이 점차 인간 예수를 신의 예수로 승화시키지 않았을까.
예수님을 대면한 지난 두 달, 한편으론 예수님을 만나고 그의 생애를 공부할 수 있어 행복했지만, 또 한편으론 그런 예수의
모습을 어떻게 좇아야 하는지 고민스러웠다. 앞으로 당분간 나의 화두는 ‘회사의 예수’가 될 것이다. 지난 강의 시간에도 고민을
얘기했지만, ‘회사의 예수’의 모습을 생각하고, 고민하지 않고서는 예수님을 대면하기가 갈수록 어려울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회사가 설령 지금은 ‘돌짝 밭’, ‘가시덤불’로 느껴지더라도 거기에 뿌려진 씨앗이 ‘겨자 씨’가 될 수 있도록, 난 지금 여기서 ‘회사의 예수’를 고민해야 한다.
이진경의 예수전
첫 시간에 “예수를 ‘지금’ ‘여기’ 자기 삶의 자리에서 해석하는 일은 자연스럽고 또 중요하다. 어떤 사람에게 예수는 민족해방
운동가이며, 어떤 사람에겐 영성지도자이며, 어떤 사람에겐 여성주의자이이며 다른 어떤 사람에겐 생태주의자일 수 있다. 또 다른
어떤 사람에게 예수는 교회개혁가이거나 민란의 주모자일 수도 있다. 문제는 그걸 뒤집어 예수를 규정하는 것이다. 예수는 놀랍게도
그 모든 것이다. 요컨대 예수는 민족 해방 운동가이며 영성 지도자이며 여성주의자이며 생태주의자이며 교회개혁가이며 민란의
주모자다. 예수는 그런 모든 면들을 뒤섞거나 절충한 인물이 아니라 그런 모든 면들이 함께 존재하는 사람이다.”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깊이 공감을 했다. 예전에 한 강의에서 ‘잡다성’에 관련된 이야기를 들으면서 잡다성 속의 일정 부분을 카테고리화시킨 것이
문화요 전통이지만, 이 카테고리 안에 하나님을 끼워넣으면 그것이 바로 우상 숭배가 되는 것이란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처럼
예수님은 모든 면이 존재하는 인물이지만, 그 중의 한 면만을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사람마다, 자신에게 부각되는
예수의 특성은 다를 것이다.
나에게 가장 두드러지게 부각되는 예수의 특성은 ‘치유자’로서의 면모다. 12년 간 혈루병 앓은 여인을 싸매어 주고, 38년 된
병자를 일으키며, 소경의 눈을 뜨게 해주고, 문둥병자를 고치는 예수. 그것은 육체적인 치유뿐 아니라 마음의 치유까지도 경험케
하는 것이다. 오랜 동안 사회에서 멸시받고 소외된 사람들이 그 멸시와 소외의 원인이 되었던 요소가 치유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근본적인 치유로 이어지는 것은 죄가 사해지는 경우일 뿐일 텐데, 이 땅의 모든 존재가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형되기
전까지는 멸시받고 소외되며 억압받는 자들은 언제나 어디서나 존재할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할 일은 그런 자들의 곁에 있으면서
고통을 함께하고 영적 자유를 누리도록 도우며 조금이라도 삶의 질이 개선되도록 힘쓰는 일이라 생각이 된다.
내가 예수를 만나게 된 것은 대학 1년 때였다. 당시는 정치적인 입장이 강한 대학생들보다도 개인적 안위와 앞날에 대해 걱정하는
대학생들이 많은 분위기였으므로, 나 또한 그런 평범한 대학생 중 하나였다. 그리고 예수를 만나게 된 것도 어찌 보면 지극히
평범한 연유에서였다. 외로움. 삶의 무의미함. 공허함이 그 원인이었다. 오직 대학 가는 것만을 목표로 달려왔던 청소년 시절이
끝나자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무얼 위해 살아야 할지 삶의 자리가 붕 떠 버렸다. 그런 와중에, 효과가 거의 없다는 노방
전도로 예수라는 분을 영접하게 되었고, 나는 그 때부터 열심히 예수를 믿게 되었다.
선교 단체에 들어가면서 예수에 대한 지식은 더욱 늘어갔지만, 억압적인 요소도 많았다. 늘 해야 하는 일이 많고, 예수를 섬긴다고
만든 빡빡한 일정 속에서 여러 훈련들을 받았으며, 주어진 교재와 프로그램으로 사람들을 섬겼지만 그 가운데서 영혼의 큰 기쁨이나
만족감을 찾은 적은 별로 없었던 듯하다. 그러나 좀더 말씀을 연구하게 되면서 예수를 더욱 인격적으로 알아갔고 그 과정 속에서
많은 치유와 자유를 경험하였다.
현재는 신앙 서적을 만드는 출판사에서 일하면서 먼저 믿음의 길을 걸어간 신앙 선배들의 저술들을 통해 예수님을 만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삶 속에서 경험하는 크고 작은 사건들, 어려움들을 통해 예수님과 끊임없이 대화하는 것이 큰 낙이다. 강의를
통해서 예수님이 직접 살아 내신 시대로 들어가 예수님과 제자들, 그리고 주변 인물들과 정황을 상상해 보는 일은 매우 유익했다.
예수님의 말씀은 그 정황을 이해하지 않으면 왜곡되게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을 반드시 유의해야 할 것 같다. 너무나 많은 형태의
믿음이 존재하고, 때로 자기 자신의 믿음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그래서 비그리스도인보다 더 편협하기도 한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꼭
필요한 접근 방식이 아닌가 싶다.
요즘의 나의 과제는 주변 상황에 얽매이지 않고, 그 상황 속에서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예수님은 지금 어떻게 일하고
계신가, 어떻게 예수님을 신뢰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것은 끝없이 요동치는 환경 속에서 예수를 의지하고 흔들림 없이 나아가는
신앙의 삶에 가장 필요한 자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아가 또 하나의 과제는 조금씩 더 사고의 범위를 확장하는 것이다.
나, 내 가족, 내 동료, 내 교우에서 조금 더 범위를 넓혀 사회, 국가, 더 나아가 세계를 돌아보고 섬기고픈 마음이 든다. 그
범위의 확장은 아마 기도 안에서 가능할 것 같다.
내가 만난 예수는 철저히 이타적이었다. 그분은 이웃으로부터 무언가를 얻을 필요가 있으셨던 분이 아니라 이웃의 필요를 나누어
주기에 이미 충만한 분이셨다. 나를 내려놓는 연습을 꾸준히 하고 예수라는 사랑의 나무에 매달려 있다면 거기서 충전된 에너지로
이웃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미 승리한 싸움을 싸워야 하는 이유는 유쾌하게 잔치를 즐기기 위해서라고 한다. 어디까지 이 잔치를 즐길 수 있는지 보고 싶다.
심동우의 예수전
7살 때부터 교회에 다녔으니까 예수와 관련을 맺은 게 25년이 넘었다. 그 오랜 세월 한 인물(신과 대립되는 의미에서의
인간이라는 의미보다는 대상으로서의 의미)에 대해 듣고 고민하고 공부해왔다면 분명히 뭔가 깨달은 것이나 변한 것이 있어야 당연한
일일텐데 그렇지 않은 내 모습을 보며 내가 도대체 그 동안 뭘 한건가하는 자괴감이 자주 든다. 물론 그동안 이런저런 변화들 -
긍정적인 부분과 부정적인 부분이 섞여있기는 하지만 - 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 정도의 변화란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면
당연히 일어나는 정도의 것들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예수는 내게 과연 어떤 존재인가.. 이 물음은 철들면서 늘 하던 고민이지만 역설적으로 한 번도 제대로 고민해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예수를 사랑한다고, 내 구세주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수없이 고백하고 노래하며 기도했지만 그 시간의 상당 부분이 나의 만족과 유익을 위한 종교적 행위에 불과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내 마음의 평안과 현실적 고민에 대한 도피의 의미가 강했다고 할 수 있다. 예수에 대한 진지한 관심과 탐구보다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놀랍지만 막연한 껍데기에 의지해 내 마음의 평안함과 현실에서의 위로를 구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서 들려오는 예수의 가르침은 내 상황과 주위의 현실에 따라 굴절되기 일쑤였고, 나의 부족하고 약한 모습은 예수의 사랑에 의해 합리화되었다. 내 관심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의 문제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 모든 것은 이방인들이 구할 바요, 오직 너희는 주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은 '주의 나라와 그 의'에 대한 막연하고 모호한 이해에 묻혀 슬그머니 사라졌던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예수를 우습게 여기는 마음에서 온 것이다. 말로는 구세주니 어쩌니 하면서 실제로는 나의 필요를 채워주는 '자판기'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아니라고 부인하려해도 내 행위나 마음의 끝에는 결국 이런저런 현실적 요구들이 있었음을 생각할 때 그동안 내게 예수는 '자판기'였던 것이다. 이런 생각도 꽤 많이 했었지만 늘 그 자리에 머물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 동안 아무 생각없이 해오던 것들에 대해서 다시 한 번씩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믿고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 곰곰히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그대로 살아내는 것이다. 막연하고 모호한 구호나 고백에 빠져있는 것이 아니라 믿는 대로 사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예수는 과연 내게 어떤 존재인가. 내게 예수는 구세주요 하나님의 아들이다. 이 사실이 내게는 가장 중요하다. 예수가 단순한 한 사람에 불과하고 모델로서의 그 삶을 닮아가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게 내 현실이기 때문이다. 예수의 삶이 아무리 가치있는 것이고 그대로 따라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해도 나는 그렇게 살 자신이 없다. 자신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에 철저하게 순복하면서 살면서도 그 삶을 고통스러워 하지 않으며. 세상의 위선과 가식을 깨고 그 안에 있는 본질에 반응하는 진정한 삶 말이다. 내 안의 이기심과 자기 중심성을 볼 때 내게는 그런 삶을 '제대로' 살아낼 가능성이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작은 일에도 겁을 내고 움츠러들며 무슨 일에든 이해 득실을 따지는 비참한 인생인 내게는 그런 가능성이 별로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언젠가 이런 나도 예수를 통해 예수처럼 한 번 살아볼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기대때문이다. 이 막연한 기대가 나의 상황과 현실에 대한 비겁한 변명이 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불구하고 이 기대가 나름의 가치가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그 이유는 내가 믿고 따르려는 예수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나의 구세주이기 때문이다. 내 안에는 가능성이 없지만 예수를 통해서는 가능성이 생기며, 나의 한계와 악함들은 사실이지만 그 모든 것을 안고 가신 분이 예수이기 때문에 나는 나를 넘어설 수 있는 것이다. 나의 본성은 비겁하고 약하며 이기적이지만 예수를 통한 새로운 나는 누구보다 강하고 담대한 것이다. 비록 지금은 그런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지만 예수께서는 나를 그렇게 만들어 갈 것이다. 이게 내 믿음이다. 가능성 없는 심각한 죄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예수를 통한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자유케된 영광스러운 존재로서의 정체성 사이의 섬세하고 미묘한 조화가 내 삶을 이루는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나를 넘어서 예수처럼 살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이 예수를 통해 베푸신 가장 큰 은혜요 영광인 것이다. 이런 마음이 들고 이런 고민을 하고 결국 이런 삶을 살게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섭리요 계획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강의는 매우 심각한 도전이면서 동시에 큰 도움이 되었다. 도전이 된 것은 그동안 막연하게 예수를 따른다고 했던 내게 예수의 삶에 대해서, 그리고 예수를 따르는 삶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접근할 수 있게 해주었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강의 중에도 언급되었지만 우리 교회의 현실을 생각해볼 때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결국은 자기가 만든 어떤 존재를 예수라 생각하고 있는 게 사실이고, 심지어 교회에서도 잘못된 복음이 선포되고 있는 상황에서 예수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보고 그 본 모습을 발견하는 것은 모든 것을 흔들 수 있는 위험한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예수에 대해서 잘못된 이미지들을 많이 가지고 있었음을 이번 강의를 통해서 많이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 교회에서 행해지고 있는 일들이 상당 부분이 예수와 관련 없는 일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점에서 앞으로의 삶에서 이번 강의를 통한 도전은 과연 내가 하는 일이 예수께서 원하시는 것일까하는 고민을 줄 것이다.
이것은 도전이면서 동시에 내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는 큰 도움이기도 하다. 예수를 둘러싼 종교적 아우라에 갖혀서 허우적대면서도 그저 믿으니까 괜찮다고 생각하던 내게 안개가 걷히는 듯한 개운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예수를 따르는 것이 뭔가 특별하고 거룩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현실에서 '예수처럼' 사는 것이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되었다. 전에도 '예수처럼' 살자는 생각이야 늘 했었지만 그것은 늘 막연한 결심이었고 이번에는 훨씬 구체적으로 그런 결심들을 하게되었다. 보이는 것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며 더 크고 중요한 것이 있다는 인식이야 늘 있었지만 그런 생각만으로는 부족하고 그렇게 사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예수를 믿는다면 이미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가치있는 것을 소유한 것이므로 더 이상의 소유과 추구는 욕심일 수 있다. 자본주의 시대를 살면서 몸 속 깊이 박혀버린 돈과 명예, 권력에 대한 추구도 예수 앞에서는 모두 허망한 일이다. 예수가 바라는 것은 내가 세상이 주는 것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찾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필요한 일에 사용하는 것이리라. 그리고 그것들보다 못한 존재로 전락한 한사람 한사람의 가치를 회복시키고 그들의 삶을 가치있게 만드는 것이리라. 나만을 바라보고 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존재를 바라보고 그들을 위해 살게 되는 것이리라. 그것은 세상의 질서를 완전히 뒤엎는 일이기 때문에 이런 일을 하는 사람에 대해서 세상은 견디지 못할 것이고 나 역시 계속 넘어질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살다보면 조금이라도 예수의 모습을 닮아갈 수 있지 않을까...
말로 예수를 사랑한다는 고백을 하는 것에는 자신마저 속일 수 있는 위험성이 내재되어있다. 믿음이라는 것이 실제로 어떤 영향을 내 삶에 미치지 않고 그냥 공허한 생각에 그친다면 그것은 오히려 없느니만 못할 수도 있다. 믿는대로 살 수 있는 용기와 의지가 내 삶에 생기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것은 나를 의지하면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오직 예수를 통한 하나님의 도움이 절실한 것이다. 그래야만 이렇게 살 수 있는 힘과 의지가 내 안에 생길 것으로 믿고 있다.
조영규의 예수전
아들에게
요즘 첫 영성체 교리를 받느라 많이 힘들지? 네가 그렇게 좋아하는 미술학원도 포기하고 매일 성당에 나가는 모습이 기특하고 아름다워 보이는구나
아빠는 사실 성문이가 배우는 교리공부가 꽤 궁금하단다. 성당 선생님은 어떻게 가르치시는지도 궁금하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네가 어떻게 어려운 성경이야기를 어떻게 이해하는지도 궁금하단다.
왜 그럴까? 아빠가 왜 성문이가 아는 성당과 예수님에 대해 궁금해 할까?
그 이유는 아빠가 이제 마흔이 넘어서야 성경과 예수님에 대해 조금 알게 되었고 앞으로 너그리고 아빠가 아는 예수와 네가 알고 있는 예수가 어떻게 다르고 정말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같이 얘기할 기회를 갖고 싶어서 이지.
아빠가 알고 있던 예전의 예수님은 2,000년 전에 태어나서 세상 모든 사람들을 구원 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박힌 성스러운
분으로만 알고 있었단다. 그밖에는 교회나 성당에서 목사나 신부가 말하는 하느님과 예수님에 대한 이해뿐이었지. 또 그렇게 심각하게
예수님의 생애와 가르침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크게 한적도 없었어
아무래도 아빠는 우리의 삶이 목회자들이 얘기하는 것처럼 그렇게 축복받지 못했고 그토록 많은 교회와 성당이 있으면서도 사람들이 행복해 하지 않은 것을 보면서 예수님을 그렇게 훌륭한 분이 아니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아.
지금 아빠가 알고 있는 예수님은 세상 어떤 사람보다도 위대하고 훌륭한 분이란다. 그 이유는 간단하게 말하자면 예수님이 살던 그
당시에 가장 못살고 굶주린 사람이나 병든 사람들이나 세상사람들이 멸시하던 사람들을 사랑하고 같이 함께 했으며 한편에서는 하느님을
팔아 자기 이익만을 챙기는 높은 지위를 가진 자들을 경멸하고 이스라엘을 지배하던 로마제국의 지배자들에게는 당당한 모습을 보였던
분이란다.
아빠가 존경하고 배우고자 하는 예수는 사랑을 실천하는 모습과 옳지 못한 일에 대항하는 모습들 바로 성경 속에 나와 있는 예수의 생애란다.
지금 성문이가 열심히 외우고 있는 삼종기도나 사도신경도 중요하겠지만 앞으로 많이 보게 될 성경책에서 예수님이 하신 일과 하셨던 말씀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일이 기도나 성당에 가는 것만큼 중요하다고 아빠는 생각한다.
성문이는 하느님이 하늘나라에 있다고 생각하니? 아빠는 아직 잘 모르겠어. 다만 예수님이 그 많은 고난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하느님을 믿고 그 뜻에 따랐다는 것을 보면 우리가 믿던 안 믿던 우리가 상상하기 힘든 큰 어떤 존재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든단다.
성문이도 앞으로 하느님에 존재에 대해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될 거야. 누구나 그렇듯이. 그러나 이런 생각만으로 풀 수 있는 문제는
아니고 성경책과 그 속에 예수님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예수님을 따르려고 할 때 답이 보일 거라는 생각이 들어
아빠는 요즘 성경책을 보면서 “나도 어려운 이 책을 성문이나 어린 친구들이 어떻게 읽을까?"하는 생각도 해.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성경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어른들은 성경은 쉽게 이해되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거나 아이들은 기도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예수님은 어린이를 사랑하셨고 하느님의 나라는 어린이의 마음과 같이 순박한 마음이 있어야만 가능하다고 했는데
말이다
아빠가 성문이나 친구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성경, 그 중에서 예수님의 생애를 한번 쉽게 적어 볼까 한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지만 아빠도 이해 못하는 부분은 빼서라도 성경 속의 예수님을 제대로 알 수 있는 글로 적어 보려고 해. 기대해 주기 바란다.
그럼 이만.
사랑하는 아빠가
김광현의 예수전
흰 얼굴 슬픈 눈
성스러운 빛 얼굴을 밝히고
우리 위해 오셨네
죄많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우리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박혀
다 이루었네 다 이루었네
아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죽었다
나무 깎으며 흘린 땀
메마른 들판 위 깨달음
헐벗고 가난한 이 주인되는 세상
슬프고 서러운 이 대접받는 세상
네 아픔이 곧 나의 아픔인 세상
모두모두 형제자매
천국을 보았어 하나님을 알았어
지금, 산 예수를 따라 웃는다
이승리의 예수전
#1.
예수님이라는 이름에 매이지 않기.
그 이름만으로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려 하거나 양심의 문제를 덜어내지 않기.
중요한 것은, 그의 '말씀'이고, 더 중요한 것은, 그의 '말씀'대로 살기.
그렇다면, 그분에 대한 지식이 중요하기 보단, 그 삶의 방식을 따르기.
#2.
좋아. 거기까지는 동의.
절대 공감.
질문 하나.
삶의 방식을 따르기 위해서, 그분의 삶을 들여다 보고, 따르기로 한다면,
지금 당장 내 곁에 있는 사람, 좀더 가까이에서 그 분의 사상, 삶의 양식을 좀더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는 '예수님처럼 살다 간' 분들의 삶을 선택하고, 삶의 표지로 삼는 것은 어떤?
류영모 선생님이나 함석헌 선생님 같은 분은,
그 제자들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참나를 찾은 분들이라고 하는데,
그 분들의 삶의 궤적은 2000년 전에 사셨던 예수라는 인물에 대해서 그 후대 사람들이 어릿하게 기록해 놓은 삶보다 훨씬 뚜렷하고, 훨씬 생생하지 않나?
만약..
그래도 예수님이라면,
그래도 예수님이 현존했던 인물들 중 가장 신과 가까이 계셨던 분이라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2000년 전에 현대의 가치를 실천하셨던 분이기에?
그 분이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고, 대속을 위한 속죄양이 아니고.. 하는 것들은,
그렇다. 사실 그게 중요한 건 아니리라.
하지만, 그 부분이 아니라면, 예수님과 다른 현인, 군자들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그 부분이 정말 예수님을 예수님 답게 하는 것일 텐데.
그게 무엇일까?
적어도, 나에겐, 지금 어떤 합리적인 이유를 당장 들 수 없을지라도, 아니면 30년 가까이 그렇게 세뇌(?)되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예수님은 적어도 다르다. 근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 근거를 대라면?
#3.
모태신앙이어서, 이름도 교회 전도사님이 지어주셨다.
고등학교때까지.. 그렇게 교회 안에서, 부흥회, 수련회때도 열과 성을 다해 기도하고, 뭔가 조금이라도 다른 것들이 감각에
느껴지면, 아, 이게 은혜로구나. 하며, 방언기도와, 작은 것들에 대한 간증까지.. 나름 참 열심히 그 틀 안엔서 만족하면서,
늘 기도로 회개하면서, 돌이키면서.. 살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대학교때 서울로 유학을 와서..
어릴적부터 다니던 교회는 이미 그 자리에 없었고, 다시 하나의 교회를 선택해서 그 공동체 안에 들어가 신앙생활을 해야겠다 싶었다.
그러나 쉽게 내 교회,라는 인식을 주는 곳은 없었고, 머리는 큰지라, 목사님들이 자신의 개인적인 신념, 개인적인 가치관을 마치 성경에서 이야기 하듯, 성도들에게 설교하는 모습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교회를 떠돌고..
그러다가 다일 교회를 알게 되어 가끔씩 출석을 하게 되었고, 그 교회가 추구하는 가치들이 나름 나에게 감동을 주어, 가끔씩.. 그렇게 가서 마음의 평화(?)를 얻는 날이 있었다.
학교앞 작은 서점에서 책을 고르다가 발견한
<열린 종교를 위한 단상> 오강남교수가 쓴 책.
이 책을 읽고 나서.. 교회라는 체제에 대한 반감이 더욱 거세졌다.
그리고, 나 자신 기실 성경에 대해, 예수님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면서 기존에 알고 있었던 것은 버리게 되고, 결국 내 안에서는 새로운 예수님의 모습을 세워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곳은 공백이었다.
갖고 있던 건 버리고, 채울 건 아직 채워지지 못하고.
김규항선생님의 글을 씨네21에서 한 번 보았다. 청년 예수에 대한 칼럼. 젤 마지막 페이지에 실렸던. 그걸 보고, 그분에게 메일을 써볼까. 찾아가서 한 번 물어볼까 싶었다.
어떻게 "전 세계에서도 작은 나라인 대한민국의 한 청년의 심장마저 뒤집지 못하는 기독교가 무슨 소용이 있는지를 물었던 어느 청년의 마음이 그렇게 확 바뀔 수 있었는지"를.
나 역시 그렇게 내 삶이 뒤집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기에..
그 후로, 계속. 정신도 마음도 떠돌고, 계속 버리기는 하는데 채워지는 것은 없는.
그런 삶이 계속 되었다가, 예수전 강의를 듣게 된 것.
서론이 길다.
그분에 대한 지식. 동정녀 마리아, 대속신앙,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에 대한 지식들이 사실일수도 있고, 허구 일수도 있다는 것. 근데 그게 중요한 건 아니라는 것. 좋다. 거기까지는 동의.
그리고, 그분이 나에게 갖는 의미는.
적어도, 내 삶을 인간의 눈이 아니라 신의 입장에서, 처음이자 끝이고, 존재이자 비존재이시고, 인격이자 비인격이며, 절대적이기
때문에 절대적인 범주에 들지 않는 분의 시각으로 들여다 보고 살펴 보고 있다는 것에 대한 안도감 하나. 내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이 어려운 일들, 힘든일이 생겨도, 결국은 큰 길로 봐서 이 모든 것이 나를 위해 준비 된 것이라고 생각하기.
그리고, 그분 앞에서 겸손하기. 삶을 살면서도.. 역시.
또. 지금은 전혀 그렇게 살고 있지 못하지만, 예수님처럼 살기.
나의 위로가 필요한 사람을 돕고, 양심을 지키고, 좋은 일 하는 사람들과 벗이 되고, 인격적으로 하나 둘, 나를 가다듬어 가기.
내 주위의 사람들 안에 있는 신성을 보고, 존재 자체를 귀중하게 여기기.
내가 다른 사람, 다른 생물, 다른 무생물과 이어져 있음을 잊지 않기.
그리고, 궁극적으로 내가 하나님께서 귀한 존재로 만들어 주신 나름의 소중한 존재임을 인정하기.
그리고... 이런 것들 이상의 내가 아직 접하지 못한.. 차원은 조금씩이나마 넓혀 가기.
#.
엄마의 신앙.
늘 뭔가 잘못했고, 늘 내가 교만했고, 늘 다른 사람들에게 뭔가를 배우고,...
그게 얼마나 큰 상처일까. 일말의 자존감도 없이.. 끊임없이 자기를 내치고, 자기를 낮추는 그 과정만 엄마의 50평생 삶에는 남아 있다.
그 신앙의 모습은 축제도 아니고, 기쁨도 아니고, 안타까움의 연속, 눈물의 연속. 금식, 고행의 연속.. 그것이 하나님이 바라시는 삶의 모습일까. 그건 아닌 것 같다.
엄마 자체의 삶도 얼마나 소중한 삶인데, 누가 함부로 그걸 옳다 그르다 말할 수 있을 것인지..
임지희의 예수전
예수는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는 모든 인간이 그렇듯이 여인에게서 태어났고, 자라는 동안 사람과 하나님이 보시기에 매우 사랑스러웠다.
서른 살까지 그는 그저 평범한 목수로 살았다. 자신에게 세례를 준 요한이 헤롯에게 잡히자 예수는 직접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했다.
그는 낮고 천한 사람들을 제자로 삼아, 사랑하고 격려하며, 하나님 나라의 신비한 비밀을 가르쳤다. 그는 환자를 회복시키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가난한 자를 먹이는 등 수많은 기적을 일으키셨다. 그가 기적을 일으키는 걸 보고 제자들은 그가 메시아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그를 따르던 제자들과 민중은 예수의 메시지를 이해하기엔 너무도 무지했고, 어리석었다. 예수는 그들에게 비유로 많은 말씀을 하셨지만 결국 그들은 예수를 배신했다.
열두 제자 중의 한 명인 유다가 대제사장과 장로들에게 예수를 팔았다. 그러나 그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떳떳하게 자신이 '찬송 받을 자의 아들 그리스도'라고 시인한다. 그로 인해 침과 주먹질과 손바닥이 그의 얼굴을 강타했다. 그는 자신을 변명하지 않았다.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삶에 집착하지도 않았다. 다만 자신의 원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원대로 모든 일을 이루라고 기도하셨다.
그가 십자가에 달려 죽는 순간,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졌다. 이로써 그는 인간이 하나님과 직접 만나 교제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다. 인간은 하나님께 직접 원하는 바를 간구할 수 있게 되었고, 직접 회개할 수 있게 되었다. 더 이상 순전한 동물의 피는 필요 없게 되었다. 예수 자신이 단 한 번에, 영원히 인류의 죄를 대속할 순전한 어린양이었기 때문이다. 예수로 인해 하나님은 인간에게 친구처럼, 부모처럼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예수는 더 이상 구약의 하나님처럼 율법이 인간을 통제하지 않도록 그 자신이 새로운 법이 되었다. 그는 율법의 완성이란, 이웃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가 부활하고 승천한지 2천여 년이 지나는 동안 그(의 메시지)는 여러 모양으로 곡해되었고, 권력에 이용당하기도 했다. 오늘날 역시, 이 단순하고 명징한 예수의 메시지는 그를 따른다고 하는 제자들(기독교인)에게조차 선택적으로 수용될 뿐이다.
예수는 어부였던 제자를 복음을 전파하는 위대한 인물로 바꾸셨듯이, 죽은 자를 살리시고, 사도 바울의 인생을 뒤바꾸셨듯이, 오늘날 그를 만나는 우리의 인생을 바꾸시고, 업그레이드 시키신다.
예수는 21세기인 지금 살아계시다. 하늘에, 지금 여기에, 그리고 내 안에도.
살아서 활발히 역사하고 계신다.
경희궁 근처 식당에서 예수전 2기 수강생들이 제 예수전을 나누었다. 스무명 가운데 절반 가량이 제 예수전을 제출했다. 차례로 제 것을 읽고 고개를 끄덕이고 박수를 쳤다. 몇번이나 목이 메어 더 읽지를 못할 땐 내가 대신 읽었다. 처음 예수전 강의를 하기로 한 이유는 예수전 원고를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두 번째 강의를 마친 지금은 강의가 원고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3월 중순부터 세 번째 강의를 한다. (사진 홍기표)
이충희의 예수전
김규항 선생님의 '나의 예수전' 강의를 듣는 2개월 동안은 약간 혼란스러운 부분도 있었습니다. 아마 기존 교회에서 말하는
예수 개념에서 벗어나 ‘나만의 예수’를 만날 자세가 되어 있지 않아서였을 겁니다. 저는 이제 막 그리스도의 생애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병아리 카톨릭 신자입니다. 세례를 받은 지는 4년 되지만 진지하게 예수의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와중 평소에 김규항 선생님의 예수관에 대해 관심이 있던 바 이번 강의를 듣게 되었습니다.그닥 깊은 신앙이
있지 않은 저는 기존 교회에서 주입된 신앙 지식에서 그나마 자유로운 편입니다. 그럼에도 선생님의 인간 예수에 초점을 맞춘 강의
내용은 부분적으로 제게 혼돈을 주기도 했습니다.
예수는 인간적인 면과 신적인 면모를 동시에 가진 분입니다. 그 자신 종종 '사람의 아들'이라는 표현을 썼듯 우리와 똑같은 사람의
모습으로 오신 것에 대해서 부정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예수가 자신을 '사람의 아들'이라고 말 할 때는 그가 유대인들로부터
수난을 당하시고 고통을 당하실 때, 또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실 것을 예언하실 때 종종 자신을 '사람의 아들'이라고
표현하십니다. 결국 인자는 사람의 모습으로 와서 사람과 함께 고통을 당하시고 비천하게 돌아가신 후에 신의 영광을입게 된다는 점을
강조하시기 위함이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관점은 예수 그리스도 생애를 죽음과 부활이라는 두 가지 연결고리 속에서 보아야 이해되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의 강의를 통해 저는 종교를 일단 한 켠에 벗어놓고 인간에 초점을 맞춰 예수의 생애를 관찰할 수 있는
눈을 얻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때때로 혼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제가 본 인간 예수그리스도-나의 예수전에 대한 의견은
이렇습니다.우선 결론부터 말씀 드린다면 저는 예수를 바로 안다는 것은 제 삶을 돌아보며 삶의 방향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예수는 그냥 안이하게 '나를 따르기만 하면 영생을 준다'고 하지 않았으며 그의 가르침은 내 삶을 송두리째
바꾸지 않으면 당신에게 도달할 수 없다는 힘든 가르침이었기에 종교적인 혼란 외에 저는 개인적인 삶에 있어서도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본론으로 들어가면 이렇습니다.
1. 나는 참된 그리스도인인가. 선생님은 강의 시간에 언젠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회변혁과 인간 해방을 강조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른다고 하면서 그러한 현실 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은 잘못 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라고요...즉
정치적인 신념 없이 종교에만 몰입하는 것은 예수를 잘못 이해하는 것이며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없다는 말씀이지요. 예수의
참된 가르침은 내 것을 내놓아 같이 나누라고 하셨는데 그 '내놓는다'라는 뜻은 내 것을 그냥 ‘나눈다’가 아니라 자기
것을'송두리째' 내놓아 모두가 평등하게 잘 산다는 뜻이라고 하셨습니다. 어쭙잖은 기부 행위로영혼의 위안을 얻는 행위는 잘못됐다는
말씀이지요. 가난한 민중에 대한 연민과애정 없이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할 수 있는가. 저에게는 큰 딜레마입니다. 사실 저는 마음의
안식을 얻기 위해 종교에 입문했다고 해도 전혀 틀린 말은 아닐 겁니다. 가난한 민중에 대한 관심은 평균적인 수준인 저에게이
새로운 종교적 해석은 앞으로 제 삶을 통해 풀어가야 할 숙제와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이 즈음해서 읽은 책의 한 부분에도
'풍요롭고 자족적인 교회에 안주하는 생활이 신앙의 전부가아님'을 깨달으라는 구절을 있었습니다. 나와 사회에 대한 관심 없이
그리스도의 핵심 사상을 깨달았다고 할 수 없겠지요. 이 단순한 구절들의 실천이 왜 이리도 힘든지요.
2.내 눈은 깨어있는가. 베드로를 위시하여 그의 제자들은 예수를 따르고 그의 기적을 가장 옆에서 지켜보며 그와 먹고잠잤던
장본인들이지만 정작 예수를 이해하지 못했던 못난 제자들이었습니다. 마르코 복음을 통해 제가느꼈던 몇 가지 중에서도 놀랐던 것은
'예수의 고독'이었습니다. 그와 가장 가깝다는 애제자들도 예수를 이해하지 못했고 그는 항상 홀로 외따로 떨어져 기도를 통해
마음의 안식을 취했습니다. 스승이 왕관을 쓰고 왕좌에 앉아 그의 후광이 자신들에게도 미칠 줄 기대했던 제자들은 참으로 깨어있지
못한 자들이었습니다.저는 생각합니다. 나 또한 그 제자들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요. 왜냐하면 저 또한 신앙을 가지게 되면 정말
마음의 안식과 평안을 얻을 줄 알았기 때문이지요. 아닐 그걸 바랬지요.그러나 예수는 ‘나는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려고 왔다’라고
선언했으며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했는데도 저는 제 나름의 허황된 생각만 가지고 왔던
거지요.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히고 십자가의 고통을 따르고 이해할 때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가장 낮은 모습으로 와서 가장 비천하게 죽임을 당한 예수의 생애에 대한 몰이해가 저의 눈과 귀를 닫았습니다.
3. 내 안의 예수의 말에 귀 기울여라.율법의 틀 안에 갇힌 바리사이파 사람들에 맞서 예수는 당당히 싸웁니다. 때로는 회당도
뒤집어 엎어버립니다. 누가 예수를 자비로운 사람이라고 합니까? 예수는 마냥 선하고 자비로운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아닌 것에는 한
치도 용서가 없었던 분입니다. 김규항 선생님은 예수가 지금 대한민국이라는 이 땅에 내려오면 교회를 그냥 지나쳐 가실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저 것이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는가"하고요...저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율법을 자신들에 맞게 해석했듯이 지금
예수가 오신다면 우리에게 무어라고 할 지 궁금해졌습니다. 형식과 관습에 얽매인 교회의 모습에서 나 또한 무의식적으로 따르고 있는
것들-그것이 무엇인지 고민되고 어떻게 그것을 털어버릴까, 이것 또한앞으로 제 신앙생활의 큰 숙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나의
예수전-예수의 가르침은 고정되지 않고 현실적이며 생생하게 날 것 그대로 살아있었습니다. 사람이 죽어가는 데 안식일의 규정이
무엇이냐고 호통치고 때로는 안타깝다는 듯이 지긋이 바라보시는예수님의 모습을 저는 가슴 아프게 기억합니다. 가장 미천하게 취급
받던 창녀와 세리와 불구자들과 아무렇지도 않게 식사를 하시고 병든 곳을 고쳐 주시는예수님의 그 무심한 듯한 자비로움...나의
예수는 이렇듯 용감하고 이렇듯 따듯하고 이렇듯 멋진 사람이었음에...그의 가르침이 잘못되지 않도록 그의 뜻이 잘못 되지 않도록
나는 내 삶과 내 이웃의 삶과, 내 사회의 삶에 더 많은 관심과 더 많은 애정을 가지고 살아야겠습니다. 2000천 년이 지난
현재에도 그의 가르침은 유용하게 남아 제 마음을 흔듭니다.
박영복의 예수전
나는 소위 말하는 모태신앙이다. 친가도, 외가도 모두 다 철저한 신앙의 집안이다. 자연스레 교회에 가게 됐다. 고민과 성찰
따위 애초에 있지도 않았다. 부모가 가니까, 삼촌이 가니까, 이모가 가니까, 사촌들이 가니까 따랐다. 튀고 싶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모두가 하는 걸 하는 것이 죽지 않는 길임을, 아주 어린 나이에도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나보다.
고등학교 때는 여자를 봤다. 교회에 가니, 나의 남성을 채워줄 이성이 있었다. 문화제를 하며, 나는 나의 원초적인 남성에 화장을
해 위장했다. 결국 이성을 얻었다. 하나님과 예수의 이름으로 감사의 기도를 하며, 찬송을 불렀다. 고민과 성찰은 여전히 낄
자리가 없었다. 그런 시간이면 다른 남성에게 그 이성을 빼앗길지 몰랐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시험을 망쳤다. 결국 우리 집안 집사님들의 강력한 권유로 포항 땅으로 향했다. 그 곳은 자칭 ‘하나님의
대학’이라 했다. 그 곳에서 나는 방황했다. 죽지 않기 위해서는 변해야했는데, 나에게 요구되는 변장의 폭이 이전에 비해 너무
컸다. 겁이 났다. 홀거 하이데가 말한 것처럼, ‘가해자와 동일시되는 것’만이 살아남는 방법인 줄을 알았기에 더 그랬다. 어느새
눈을 감고 모든 가스펠을 따라 부를 수 있게 됐다. 사람들 앞에서 ‘예수 曰’ 할 수 있게 됐다. 죽지 않기 위해 무엇이든
한다는 말을, 그래서 나는 믿는다. 고민과 성찰이 있다고 스스로 믿기로 했다.
졸업 후 군대에 가서 나는 비로소 ‘자유’를 느꼈다. 그 곳에선 그 동안의 내가 아니어도 누구도 정죄하지 않았다. 교회를 빠져도
불편함을 느끼지 않게 됐다. 그런데 그 불편함이 불편했다. 박완서 선생의 소설에 나오는 엄마가 오빠의 죽음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것처럼, 나는 ‘기독교’라는 그늘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다시, 교회를 찾았다.
전역 후 나는 자유롭게 됐다.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 현재, 무엇을 할지 두려워 떨면서도 나는 자유를 느낀다. 철저히 혼자서 나
자신에 대해 돌아본다. 너무나 혐오스럽고, 괴롭고, 무서워서 자유로운 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자유를
자유롭게 해 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이제야 비로소 고민과 성찰을 시작한 것이다. 자유의 괴로움을 덜어내고자 쌍심지를 켜고 주변을
살폈다. 그렇게 김규항 선생의 『예수전』 수업을 듣게 됐다.
수업을 들으면서 두려움을 떨쳐내고자 했는데, 더 무서워졌다. 제길. 차라리 예전처럼 1주일에 한 번씩 예수의 이름으로 자위를
하는 게 더 쉬웠다. 죄책감을 느꼈지만, 잠시만 지나면 잊을 수 있었다. 안식일을 뺀 나머지 날들은 오히려 더 가뿐한 마음으로
지낼 수 있었다. 주일, 그것도 2~3시간 정도만 엄숙하면 됐다. 더구나 시간이 갈수록 죄책감의 한계효용도 줄어갔다. 그 쉬운
것을 우연찮게 듣게 된 수업으로 다시 못하게 되는 것이, 솔직히 말하면 지금도 억울하다.
사실 알고 있었다. 예수를 믿는 것은 ‘예수처럼 되는 것’이 아닐까, 항상 되뇌고 있었다. 그 길이 어렵다는 걸 알아 외면했을
뿐이다. 그러나 그 분과 함께 했던 이들이 당시에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하던 이들’이라는 사실은 몰랐다. 아니, 제대로 고민하지
않았다. 예수 주변에 여성들이 남성들만큼 많았으리라는 점도 알지 못했다. 아니, 내가 남성이니까 알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들
역시 사람이 아니었던 바, 결국 예수는 사람도 아닌 이들과 함께 했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근 30년이나!
예루살렘에 들어갈 때 환호하던 군중과 예수를 십자가형으로 몰아간 군중이 어떻게 다른지 이제 이해하게 됐다. 앞의 군중은 사람이
아니었던 것을 이제야 알게 됐다.
황우석이라는 사람 때문에 온 신경이 그 쪽에 가 있을 때, 부활이 ‘세포의 재생이라면 결국 다시 늙는 것 뿐’이 아닌가라는 말에
충격을 받았다. 태백산맥을 처음 읽었을 때처럼, 놀랐다. 내가 알던 것은 도대체 뭐였단 말인가, 허망했다. 그러면서 기뻤다.
‘부활’로 박제해버렸던 예수가 내 안에서 깨어나려 한다. 그러나 박제의 더께는 너무나 두텁다. 그걸 깨려면 내 안의 예수가
노력하는 것처럼, 밖에서 나도 무언가 한다. 그것이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
“율법학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와서 그들이 논쟁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 잘하시는 것을 보고 예수께
물었습니다. “모든 계명들 가운데 어떤 것이 가장 중요한 계명입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첫째로 중요한 계명은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우리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시다. 네 마음과 네 목숨과 네 뜻과 네 힘을 다해 주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고, 두 번째로 중요한 계명은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이다. 이것보다 더
중요한 계명은 없다.” (마가복음 12장 29~31절)
나는 스스로를 저 바리새인과 같다고 느낀다. 바리새인은 예수께 ‘맞다’ 대답했다. 예수는 그런 그에게 ‘하나님의 나라와 그리
멀리 있지 않다’고 말한다. 나는 예수께 ‘맞다’고 대답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저 때에 ‘맞다’함은 단순히 말 뿐이 아닌
것이기 때문이다. 저리 살겠다, 는 신앙고백이기 때문이다. 그건 너무나 힘든 여정을 내포한다.
이제 저 두 명제를 두고 싸우려 한다. 자유로워지고 싶다. 자유롭기 위해 싸워야 함을 안다. 이겨낼 수 있을지, 장담하지
못하겠다. 아직은. 그게 진심일 거다. 스스로 상찬해봐야 당장 ‘내 하나님’을 ‘온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조차 가능한지
모르겠다. 그러할진대 ‘내 이웃’에 대함은 말할 것도 없다. 평생에 걸쳐 실패하고 또 실패할지도 모를 일이다.(지금도 나는 소위
사랑하는 내 주위 사람들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지 못하는데!)
『나의 예수전』을 쓰겠다 했던 게 후회된다. 지금까지 ‘나의 예수’가 박제돼 있었는데, 뭘 얘기할 수 있을까. 더럽게 쪽팔린다.
여태 난 뭘 보고 기도하고, 울고, 웃었던 걸까.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에서 마지막에 예수가 사탄에게 속았던 것처럼,
당했을라나. 그렇다 해도, 여전히 쪽팔린다. 예수한테, 나한테 모두. 더 이상은 쪽팔지 말아야지, 다짐해본다. 어찌될라나.
일단은 사과부터 해야겠다. 그동안 나의 자위를 받아주었던 예수에게.
예수여, 고맙고 미안하다. 이제 당신 말에 정식으로 귀 기울일게. 내 안의 당신 이야기는 이제 시작임을, 약속한다. 항상 함께 하고 지켜봐 주길. 당신의 부활이 내 몸 속에서도 이루어지길. 아멘.
홍기표의 예수전
백 몇 년 전 천주교 박해로 풍비박산 나 족보고 뭐고 없는 집안의 딸과 결혼하느라 나는 처음으로 교회에 갔다. 족보가
중요한 건 물론 아니다. 그런 건 나도 없다. 몇 대를 걸쳐 내려온 그들의 믿음이 내게 약간(?)의 강요가 되는 게 문제였다.
마뜩치 않았지만 그래도 결혼은 해야 하지 않겠는가. 광개토대왕 같은 장인에게 ‘제게도 종교의 자유는 있지요, 그것은 소중한
것이고요. 마음이 원할 때 다니게 해 주세요.’라고 말할 용기도 없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시간은 알아서 갔고, 별 의미도 없이
그냥 멋으로 루가라는 세례명도 받았다. 그 후 일 년 남짓 교회에 나갔다. 어려움은 없었다. 몇몇 신부의 시대착오적 강론을 참는
아량만 있으면 되었으니까. 그러나 나는 정말 물리적으로만 교회에 갔을 뿐이다. 그런 내가 [나의 예수전]을 쓸 수 있을까. 몸이
쪼그라든다. 진공과 같은 공포다. 그래도 교회에서 만나지 못한 예수를 강의 내내 만나지 않았던가.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예수의 삶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지 않은가. 알량한 밑천이지만 나의 삶과 겹쳐서 생각할 수는 있겠지 싶다. 내게 예수란 또
[나의 예수전]이라는 강의란 무엇이었을까.
나는 고등학교 교사다. 그래서 어떤 글이나 말을 들을 때면 으레 직업과 연결시켜 생각하게 된다. 당연한 일이다. 자신의 경제적
계급과 사회적 위치를 바탕으로 세상을 이해하는 것은 말이다. 물론 공평하고 공정한 이해여야겠지만. 아무튼 나는 고등학교 교사고,
예수도 [나의 예수전] 강의도 거기서 출발해야겠다.
한국의 교회는 비교대상을 찾을 수 없을 만큼 독점적이고 배타적인 기업의 형태를 보이고 있다. 슬픈 일이지만 한국의 학교 역시
마찬가지다. 교회가 믿음을 독점함으로써 자신들의 권위를 공고히 했고 부정한 현실을 은폐시킴으로써 권력을 나누어 가졌다면 한국의
학교 역시 교육을 독점함으로써 지배 이데올로기를 아무런 저항 없이 전파하였고 부정한 현실에 순응하도록 세뇌함으로써 온갖 명예와
물질적 이득을 취했다. 교회와 학교는 부정한 권력과 거래했고 그 역사는 유구하다.
교회가 믿음의 형태를 달리하는 자들을 이단으로 규정하여 자신들의 권위를 세우듯 학교는 형태를 달리하는 교육자들을 장사꾼처럼
생각하고 사기꾼처럼 여김으로써 자신들의 권위를 세웠다. 장사꾼이라는 비판에 자신들도 자유로울 수 없음에도 말이다. 한줌도 안
되는 그들에게, 그들의 권위에 토를 달고 도전하는 사람들에겐 가혹한 응징이 가해졌다. 확실히 그들은 주님의 종도 교육자도
아니었다.
교회에서의 발언자가 오직 목사와 신부이듯 학교에서의 발언자는 오직 선생뿐이다. 교회에서 신도들이 높은 제단 위에 있는 목사와
신부를 일방적으로 올려다보듯이 학교에서 학생들은 높은 교단 위에 있는 교사를 일방적으로 올려다보아야 한다. 교회에서 이해와
납득에 앞서 믿음이 강조되듯이 제도 학교에서도 무조건적인 믿음과 복종이 강조된다. 상호 소통이나 신뢰는 버릇없는 생각일 뿐인
것이다.
또한 교회의 발언자들이 선전하는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의 신념이 극악하고 옹졸하듯 학교의 발언자들이 선포하는 성공 역시
조잡하고 천박하기 짝이 없다. 한철 공부해서 좋은 간판을 걸고 물질적으로 풍요롭게 사는 것이 성공한 삶, 훌륭한 삶이라니 얼마나
불쌍하고 애처로운가. 이런 공간에서 예수의 말처럼 이웃을 내 몸같이 생각하며 살라는 것은, 모든 차별과 억압을 거부하며 살라는
것은, 얼마나 소유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풍요롭게 존재하느냐고 묻는 것은,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느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만족할 것이다,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라고 가르치는 것은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의 말일 뿐이었다.
안식일을 위해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해 안식일이 있다는 예수의 가르침은 학교 안에서 빛 좋은 개살구였다. 학교는
학교를 위해서 더 많이 존재했다. 예수 당시의 세밀한 율법이 이스라엘 민중을 죄인으로 만들었듯, 헌법 위에 군림하는 학교의
학칙이나 선도규정은 말끔하고 단정하지 않은 차림과 점잖고 예의바르지 않은 학생을 죄인으로 생산해냈다. 학교는 학생들의 행동과
의식 뿐 아니라 패션에도 관심을 가졌다. 단정하다 그렇지 않다, 학생답다 그렇지 않다는 조악한 기준을 가지고 말이다. 뿐이랴,
폭력은 일상화 되었고 때론 정당한 것이 되었고 온갖 방법으로 미화되었다.
부정한 교회를 변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 부정한 학교를 변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제대로 된 교육에 대한 제안은 체제를
분열시키려는 몹쓸 짓이 되었고 빨갱이가 되었고 미꾸라지가 되었고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는 막말이 예사가 되었다. 게다가 내게는
기간제 교사라는 비정규직의 딱지가 붙어 있었다. 나는 물러섰다. ‘그래, 정규직이 되었을 때는 다를 것이다. 그땐 분명 다를
거야’ 되뇌며 쫓기듯 여러 번 학교를 옮긴 끝에야 나는 드디어 정규직 교사가 되었다. 그러나 나는 간사한 놈이었다. 새벽닭이
울기 전 세 번이나 스승을 부인한 베드로와 제자들처럼 또 다시 변혁의 순간이 왔을 때, 실천의 순간이 왔을 때 한발 비켜섰다.
절정에 서있지 못하고 한발 비켜 서있었다. [왜 나는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의 왕궁의 음탕
대신에/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옹졸하게 욕을
하고...../모래야 나는 얼만큼 적으냐....]를 읽는 것도 내겐 사치, 난 늘 몸과 마음이 달랐다. 염치없는 일이었다.
현실적으로 다가올 생계의 위기가 걱정되었을까? 회유와 협박에 시달리는 게 귀찮고 싫었을까? 누군가에게 나쁜 놈으로 인식되는 게
무서웠을까? ‘이 정도면 됐어. 뭐 다 그렇게 사는 거지...내가 뭐 잘났다고’하며 둥글둥글 살고 싶었을까? 비정규직으로 떠돌던
그 5년간의 불안과 고통이 두려웠을까? 이천 년 동안의 외로움이라는 예수처럼 올바르게 사는 사람은 외로울 수밖에 없다는 걸
몰랐다. 나는 참 그렇게도 못 알아듣는 놈이었다. 알았어도 모른 척 했을 것이다.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비타협적으로 싸웠던
예수의 삶은 외로웠지만 아름다웠다. 신념이고 뭐고 팽개치고 살았던 나의 삶은 편안했지만 비굴하고 비참했다.
책 몇 권 읽은 것과 블로그에 자주 들어가는 것, [고래가 그랬어]를 정기 구독하는 것만 믿고 나는 이 강의에 참가했다. 알량한
사회의식을 배설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허영으로 말이다. 당당히 아내까지 권유해서 쌍으로 말이다. 이게 나의 옹졸한 반항이었다.
하지만 강의를 들을 때마다, 예수의 삶이 다가올 때마다 살점이 뚝뚝 떨어지도록 내려치는 회초리를 맞는 기분이었다. 후회,
부끄러움, 태만, 나태, 나약, 소심, 비겁..... 교사로서 8년의 삶은 이런 단어들로밖에 설명할 길이 없을 것 같았다.
마땅히 다르게 살아야 하겠다는, 똑바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예수의 삶은 내게 너무도 먼 곳을 가리키는
이정표 같다. 내 삶이 딱 그 정도 밖에는 안 되기 때문이겠지만. 그렇게밖에 살지 못한 나였기에 혹여 이 글이, 이 생각이 또
한 번의 몸짓에, 제스처에 그칠까 나는 두렵다. 또 한 발 물러서면 어쩌지. 회개란 말은 흔하지만 회개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지금까지의 삶과 전혀 다른 삶을 살겠다고 말하긴 쉽지만 그렇게 사는 건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호기 넘치는 자신감으로
명쾌하게 말할 수 없는 내 자신이 나는 한없이 부끄러울 뿐이다.
손미영의 예수전
아래 글은 권정생 선생님의 우리들의 하느님이라는 책에서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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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아주머니가 몹시 바쁘게 집안일을 하고 있는데 어떤 거지가 구걸을 하러 왔다.
정신없이 일에 몰두하고 있던 아주머니는 자기도 모르게 귀찮아서 퉁명스럽게 지금은 바쁘니
다른 데나 가보라고 거지에게 박대를 하며 내쫓은 것이다.
그런데 그 거지가 돌아서 나가는 뒷모습을 힐끗 보니 놀랍게도 틀림없는 예수님이었다.
깜짝 놀란 아주머니는 하던 일을 그만두고 허겁지겁 쌀을 한 대접 떠서 달려나가 보니
거지는 그새 어디론지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옆집으로 또 옆집으로 샅샅이 살펴보았지만 역시 허사였다.
집으로 돌아온 아주머니는 주저앉아 통곡을 했다.
그때부터 아주머니의 눈에는 어떤 낯선 사람도 예수님으로 보이게 된 것이다.
그렇게 아주머니는 십년을 하루같이 만나는 사람을 모두 예수님으로 알고 대접을 했다.
이야기를 다하고 나서 아주머니는,
“세상 사람이 다 예수님으로 보이니까 참 좋아요.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드리고 싶어예.”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은 이렇게 서로가 섬기며 살라는 가르침을 실현하기 위해서였다.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도리어 종의 몸으로 섬기러 왔다고 하셨고,
그 말씀대로 가난하고 병든 사람을 찾아다니며 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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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권정생 선생님의 글을 인용한 것은
수업을 들으며 가장 가슴에 남았던 구절이 세상 가장 보잘것 없고 비루하고 남루한 자들을 예수님은 종의 몸으로 섬김을 하러 오셨다는 거였다
그리고 후에 웃을 수 있다, 행복할 수 있다, 배부를 수 있다는 김규항님의 글을 보면서
서툴고 어리숙한 나의 믿음 안에서 믿음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준 나의 예수전 수업이 한없이 감사하다
나의 예수전 강의에서 놓친 부분도 많고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너무 많은 것을 앞으로 계속해서 느끼고 알아가야 하겠지만
복닦이는 지금 삶이 지옥이지 뭐가 지옥이야 하는 중얼거리는 마음을 조금씩이지만 위안을 받을 수 있고 달리 생각할 여유를 가질 수 있음에 기쁘다
아주 많은 오랜 시절이 걸릴것이다
그러나 한줄한줄 읽어내려 갈 것이다
또한 내 안에 예수를 살려내는 과정과 모습을 내게 선물하고 싶어진다, 곁에서 예수의 삶을 살고 있는 자들이 웃을 수 있는 날이 기다려진다
양은정의 예수전
그이의 얼굴 가죽, 을 벗겨내고 싶네 그 가죽, 바람 품고 흔들리는 담양 대나무숲 꼭대기에 걸어 말려 진초록 대나무 이파리향 가득 스며들게 하고 싶네 바람소리 살갗에 부딪치게하고 싶어 나는 잠든 예수의 주름진 낯에 칼날을 들이댄다 이마 언저리에 칼날을 깊숙이 꽂아 그 경계를 따라 손목을 움직이면, 그이의 피묻은 살갗, 가죽이 벗겨질 것이네 살갗을 죽 벗기면 드러날 낯선 예수의 얼굴 그 끔찍한 낯, 그러나 그 가죽 담양 대나무숲에 한 열 달 건조시키면 그이의 주름 사이로 담양대나무 수천그루 자라겠지 담양일대 풍경, 낯빛에 담은 예수 홀로 울울창창 푸르러 낮은 바람소리 낼 것이네 속으로 흔들리며 덩실덩실 춤, 출 것이네
김현정의 예수전
남편의 권유로 듣게 된 ‘나의 예수전’
백 년도 전, 박해를 받아 야반도주 하느라 족보고 뭐고 없는 구교 집안의 딸로 태어나 종교를 절대적인 신념으로 삼고 살아가는
집에서 원치 않아도 당연히 종교의 울타리 안에 있을 수밖에 없었던 나이다.살아오면서 내 속에 자리 잡았던 몇몇 keyword를
중심으로 나의 이야기를 풀어보려 한다.
#1.두려움...
종교가 사람의 영혼을 유혹하는 첫 번째 사과.
죄 지으면 지옥에 가... 거긴 고통스럽고 무서운 곳이야... 어렸을 적 나는 눈을 감으면 악마가 보이고 저승사자가 보였다.
깜깜한 곳을 죽도록 싫어했고, 밤에도 불을 끄면 잠을 자지 못했다...난 천당에 가기 위해선 착한 아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2.순종...
난 욕심 많은 아이였다. 갖고 싶은 것도 많았고, 되고 싶은 것도 많았고, 잘하고 싶은 것도 많았다... 그런 나의 욕심을 기도하며 눌렀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3.위안...
욕심을 모두 채우기엔 난... 부족한 것이 많았고, 농사짓는 우리 부모는... 가진 것이 없었다. 세상 속에서 타협이 필요함을
알았고, 포기하는 방법을 배웠다. 욕심을 버리니 자학이 찾아왔다. 왜 나는 이렇게 보잘 것 없는지, 우리 부모는 왜 밤마다
농사일로 고된 몸을 뉘이며 에고지고 앓는 소리를 삼키며 살아야 하는지, 그렇게 고된 삶에도 왜 우리는 가난한지... TV엔 잘난
사람도... 부자도 많았다...
그런 나를 어둑한 성당, 십자가 상에 매달린 예수님 모습에서 위안 받았다...
예수님은 인자한 미소를 나를 안아주었다.
"너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나의 귀염둥이, 나의 사랑이다."
#4.구원?!
20대 어느 날, 교회를 다니던 남자친구가 말했다.
“천주교에는 ‘구원’이 없다고 기독교에서는 가르쳐. 정말 그러니?”
참... 이상했다... 구원이라...
기독교의 본질은 곧 ‘구원’이라고 그는 말했다.
나는 묻고 싶었다. “구원이 왜 중요하지? 무엇으로부터 구원받고자 하는 거지?”
스무 해가 넘게 그리스도교의 틀 안에서 살아왔지만, 내게 구원은 한 번도 목표인 적이 없었고, 구원을 받기 위해서 성당에 나가지도 않았다.
내 안의 예수님은 한 번도 내게 구원을 속삭인 적이 없었고, 구원을 위해 기도하지도, 그럴 뻔뻔함도 내게는 용납되지 않던데...
그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나가는 이유가 단지 ‘구원’을 위해서란 말이야?
제도 교회가 없는 자의 편이라고 느낀 적도 없었지만, 그 말은 정말 실망이었다...
#5.기도
구원? 천국?
난 그런 거 관심 없다. 아니,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나보다 더 간절히 주님의 은총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먼저 돌아보아 달라고 기도한다.
예수님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는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듯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하고 말씀하셨으므로...
#6.예수전을 듣다
예수 안에서 살았지만, 예수의 삶에 깊은 관심을 갖지 못했음을 반성하며 이 강의를 선택했다. 예수님의 삶을 따라가면서... 나는
기뻤다... 예수님은 2000년 전 십자가를 선택해 죽었지만, 예수님은 여전히 내 안에 생생히 살아있음을 느낀다. 예수는 죽지
않았다. 그리고 예수의 삶을 살기엔 난 자본주의에 뼈 속까지 찌들은 나약한 인간이지만, 예수의 삶을 항상 기억할 것이다.
보잘 것 없는, 소외받은 이들의 친구였던 예수님. 나도 그들의 친구로, 사랑하며 살아가고 싶다.
이상용의 예수전
초등학교 3학년? 4학년? 때에 나는 혼자서 성경책을 읽었다.
우리 집에서는 굉장히 희귀한 일이었는데 왜냐하면 그 당시 우리 가족 중 누구도 교회나 성당에 나가지 않았기 때문이다.우리 집안의
문화는 유교적 현실주의였고 기독교와는 거리가 있었다. 가족들은 성경을 읽는 나를 신기하게 생각했다(지금 내가 생각해봐도
신기하다). 알아듣기 힘든 말투, 어려운 말들로 가득 한 신약성경을 나는 물어볼 사람 하나 없이 혼자서 읽곤 했다.사실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다.
예수와의 첫 만남은 그보다 더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집에 있던 그렇고 그런 위인전집 중 1권이 ‘예수 그리스도’였다.예수가 행한
이적들을 중심으로 기술한 것으로 기억되는데 나는 예수가 다른 위인들과는 좀 다른 것 같다고 느꼈고 흥미로웠다. 갈색 수염과 흰
피부, 인자한 눈매를 가진 예수의 그림은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중학교 사춘기 무렵에 나는 다시 예수를 읽었다. 그때는 걷잡을 수 없는 불안감을 어찌할 수 없어서 매달린 것이었다. 아무도
그러라고 시키지 않았건만(그때에도 우리 가족 모두 ‘무교’였고, 나도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 나는 예수의 이야기를 읽으면 마음이
평화로왔다.
이러고 보면 예수와는 인연이 꽤 깊은데도 게으른 천성 탓에 한번도 제대로 공부해 본 적은 없었다.‘믿으면 복이 온다’는 식의
맹목적인 믿음을 강요하는 교회에는 가고 싶지 않았고 예수가 멀리했던 자들에게만 관심을 기울이는 교회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또
우리 역사에서 기독교가 미친(그리고 미치고 있는) 부정적인 면들은 교회에 가볼까,하는 마음을 가로막았다. 교회는 그랬지만 예수는
달랐다. 나는 지금도 직장동료 몇몇과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틈틈이 요한복음, 마가복음을 읽는다.
하지만 예수는 여전히 내 삶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지 못했고 여전히 나의 삶의 방식은 나의 욕망에 끌려다니는 그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래, 나는 회개를 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던 차에 <나의 예수전>을 듣게 되었다. 가장 유명하면서도 가장 잘못 알려진 사람, 예수의 입장에서 보면 참
쓸쓸하겠다...첫 시간에 선생님이 ‘2000년의 외로움’이라는 말씀을 하셨을 때 나는 마음에 어떤 느낌을 갖게 되었다. 꽤
오랫동안 예수라는 사람을 알았지만 그동안 예수를 제대로 느낀 적이 없었다. 예수는 나에게 그저 편안함과 위로와 필요할 때 나의
기도를 들어 주는 사람이었을 뿐이었다. 나는 예수를 나와는 전혀 다른 신적 존재로만 여겼고, 거기에는 어떤 구체성을 띤 역사도
없었다. 그러니까 예수는 예수, 내 삶은 내 삶인 채로 따로따로였다.나는 내 안에서 박제화된 예수를 되살려 느끼지 않고는 진짜를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생전 처음으로 앉은 자리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마가복음을 읽는데 그렇게 눈물이 흘렀다. 약간 이상한 일이었다. 이제까지 내
멋대로 예수를 생각해버리고 써먹었었는데 어느 순간 예수의 마음이 느껴졌다고 해야할까. 먼저 깨달은 자가 운명처럼 떠안아야하는
고독과 슬픔, 그리고 죄인일 수 밖에 없는 인간들을 볼 때 느껴지는 애처로움과 연민이 어떤 것이었을지 헤아려졌다.예수가 피로써
이루고자 했던 것, 그리고 그것을 끝까지 이해하지 못하고 완벽하게 스승을 버렸던 제자들이 바로 나의 모습이었다. 그동안 멋대로
예수를 들먹거렸던 나를 보면서도 예수는 쓸쓸하셨겠구나... 말해도 이해하지 못하고, 보아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 하느님의 뜻은
버리고 인간의 전통을 지키기에만 급급한 굳은 마음,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만 예수를 판단하고 이용하는 이기심, 깨어있으라는
스승의 말을 한순간도 지키지 못하는 연약함은 바로 내 안에 있는 것이었다. 조금 전에 자신의 입으로 내뱉은 약속을 바로 다음
순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완벽하게 어기는 베드로가, 혼자 살겠다고 예수를 아무 망설임없이 버리고 벌거벗은 채로 달아나는 제자가
바로 나였다.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라고 소리치던 군중들과 두려움에 싸여 도망치던 사람들이, 유혹에 너무도 쉽게 넘어가는 사람들이
바로 나였다. 내가 예수를 죽이고 지금도 죽이고 있구나.
이제서야 진짜로 예수가 삶과 죽음으로써 우리에게 전하고자했던 하느님의 뜻이 알고 싶어졌다.
가난한 자들을 편애하고, 자신의 선택과 관련없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킬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버렸던 예수, 죄인을
가여워하고, 모두가 그렇다고 할 때도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씀하시며 분노하고 싸우는 예수, 어리석은 우리를 위해 피를 흘려
처참하게 모욕당하며 죽으신, 그리고 부활하여 지금 여기에 살아계신 예수의 뜻이 궁금해졌다.
저 멀리 계신 예수가 아니다. 나도 예수를 오랫동안 외롭게 했다.
내가 서 있는 현실에서 어떻게 예수를 따를 것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해야겠다. 그리고 예수가 보셨으면 뭐라 했을까, 예수라면 무엇에 분노하고 무엇을 위해 싸우셨을까를 기도하며 생각하며 살아야겠다.
꽤 오랫동안이었던 나와 예수의 인연의 방향을 이제부터 조금씩 틀기 시작해야겠다.
여미숙의 예수전
나는 ‘B급 미싱사’였다. 공부를 썩 잘했지만 그러저러한 이유로 진학하지 않았다. 나의 하나님이 공장에서 나를 곧
구해주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분노하는 나를 보면서 내 신앙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난 그렇고 그런
기복 신앙자였던 것이다. 그 후 더는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 가끔 기도할 때도 있었지만 그건 그저 나와의 대화였다.
본받고 싶은 사람을 찾았다. 그 무렵 예수가 사회주의자란 말을 들었다. 머릿속이 맑아졌다. 마음이 설렜다. 내 삶의 근간이 되길 바랐던 예수가 사회주의자라니, 예수전을 듣고 그 말을 확신하고 싶었다.
불성실한 신앙인이었음에도 강의를 듣는 내내 걸림돌이 된 건 신으로서 예수였다. 그 예수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예수는 너무 오래 전 사람이었다.
그러나 예수전에서 만난 예수는 지금껏 알던 예수가 아니었다. 예수는 비천한 자들을 사랑할 줄 알았고 진심으로 그들을 사랑했으며
그것을 위해 자존을 버렸다. 이 식상한 말이 오래 남는 건 이것들을 실천하며 사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아서다. 이 깨달음은
예수보다 더 산 덕이다.
지금껏 비천한 자들과 나를 구별 짓기 위해 노력했다. 그건 내 삶의 아주 중요한 프로젝트였다. 미싱을 돌리다 펜대를 굴리면서 그
증상은 더해졌다. 사실 난 그들인데, 아무리 숨기려 해도 그들일 수밖에 없는데 어리석게도 나는 그들과 다른 말을 쓰고, 다르게
입고, 먹으려 했다. 이 허위의식을 몰랐을까. 모른 척했을 뿐이다. 예수전의 예수가 오랫동안 외면했던 내 모습을 마주보게 했다.
나한텐 ‘깡’이 있다. 어릴 적부터 난 잘 싸웠다. 대개의 싸움에 아주 성실히 최선을 다해 싸웠다. 나의 성실함(?)은 그런
데서 돋보였다. 직장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불의한(?) 일에 맞서는 내 모습이 때때로 대견스러웠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나는
내 자존에 관한 일에만 들고 일어섰던 것이다.
내 머릿속에 다른 사람들이 있었던가. 몇 달 전 이라크 전쟁을 반대하는 행사장에 참석한 일이 있다. 전쟁 때문에 다친 아이들
사진이 슬라이드 필름으로 이어졌다. 모두 훌쩍였다. 난 울지 않았다. 왜 난 아프지 않은가, 행사가 끝날 때까지 나에게 거듭
물었다. 예수가 나와 피부색이 다르고 다른 말을 쓰고 다른 옷을 입고 다른 음식을 먹었다는 이유로 실존 인물로 여길 수 없었던
것처럼, 피부색이 다른 그 아이들을 나는 사물처럼 바라보았던 것이다. 난 병자였다.
‘자발적 가난’. 이 말의 정확한 뜻을 알았을 때 내가 성경 속 그 부자 청년이라고 생각했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방법은
그들처럼 사는 것이다. 이 진부한 진리라니, 그런데 왜 난 이 말에 주저앉고 싶었을까. 월급 일부를 사회단체와 개인에게 후원하는
것을 자부해왔고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 덜어내야 하다니, 방금 가난한 동네에서 벗어난 나더러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라니 좀 억울하기도 하다.
강의 중 가장 ‘자극적인’ 말이 회개였다. 지금까지 내 삶을 밑바닥부터 뒤집어엎는 것. 삶의 전복. 회개할 수 있을까. 자발적 가난이란 말에서,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방법에서 나는 여전히 주춤거리고 있다.
채송아의 예수전
"선생님, 나는 이 모든 것을 어려서부터 다 지켰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를 눈여겨 보시고, 사랑스럽게 여기셨다. 그리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에게는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가서, 네가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라. 그리하면 네가 하늘에서 보화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그러나 그는 이 말씀 때문에 울상을 짓고, 근심하면서 떠나갔다. 그에게는 재산이 많았기 때문이다…(막10장 중에서) -
나의 예수전을 쓰기 위해 마가복음을 다시 들춰보며, 나는 이 부자 젊은이의 모습에서 바로 나의 모습을 본다. 나의 부모님은
당신들이 이룩한 사회적 성취와 부를 사회에 기부하겠다고 늘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들의 성취가 나의 미래와는 상관없다고 생각했지만,
적어도 성장기의 나는 부족한 것 없이 자라왔다. 그러다 자의식이 자라면서부터 이웃들의 물질적 궁핍과 사회의 불균형을 목격할
때마다 마음이 불편해지곤 했다. 지금도 기억나는 중학교 시절의 한 장면이 있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강남 반포에 있었는데,
중학교 2학년 때였던가 우리들 가운데 한 친구가 수업시간에 토론을 하다가 ‘우리의 존재 만으로도 가난한 사람들에게 고통이
된다.’라는 말을 하자 아이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술렁거렸다. 선생님은 한 동안 빙긋이 웃으시더니 그 친구의 말을 부드럽게
긍정하셨다. 그렇다. 나는 나의 존재만으로도 가난한 사람들에게 고통이 되는 현실에서 어떻게 살아야 올바르게 사는 것인지 몰라 늘
답답하곤 했다.
그러다가 만난 예수님은 참으로 명료한 삶의 지침을 제시한다. ‘하느님과 맘몬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적어도 나는 돈을 벌기 위해 살지 않으며, 맘몬을 섬기며 일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그러나, 거기까지이다. 언제나
거기에서 머무르곤 한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니,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지 나는 갈 곳을 모르고
서성이기만 하고 있다. 스스로 가난해지기를 선택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버리고, 어떻게 살아가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 회사
동료들과 점심을 먹을 때마다 매일같이 화제에서 떠날 줄 모르는 집을 사야만 돈을 번다는 것과 증권을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이야기를 들으며 나에게는 그런 것들이 의미가 없다고 말하면서도, 속마음은 슬며시 나도 집을 사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빈번해지곤 한다.
함께 해야 할 일을 대신 해 주고 있는 사회 단체에 기부금을 내는 것으로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삶을 유지하기 위한 면죄부를
대신하는 것 같아 요즈음은 그런 일들마저 회의감이 든다. 매달 일정한 돈을 벌어, 할 수 있는 최대한 저축하고, 그 중 일부를
떼어 기부하고 자연을 생각하며 적게 쓰면서 살아가는 것. 이것이 내가 현재 살고 있는 모습이다. 난 이런 내 모습이 지극히
방어적이고 수동적인 모습에 불과하다는 자괴감에서 떠나지 못하고 있다. 쇼핑백을 들고 카페를 전전하며 사회주의를 떠드는 이들이
바로 너와 나의 모습 아닌가, 우리는 그저 일하기 싫어서 자본주의를 미워하는 것이 아닐까.
지난 주에는 병점 역 화장실에서 두 아주머니의 대화를 들었다. 그곳 화장실 청소를 하면서 한 달에 75만원을 받는다는
아주머니와, 아들 사업이 망해서 59살 나이에 처음으로 세상에 나와 일을 해 본다는 다른 아주머니는 식당 일을 하고 있는데 하루
12시간 근무에 150만원을 벌 수 있다며 식당 일이 낫겠다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힘들고 거친 일을 하는 노인들, 장애를
가진 사람들, 구걸을 하는 사람들, 그러한 사회의 모순을 그대로 자기 삶으로 안고 사는 이들을 볼 때마다 일어나는 안타깝고
불편한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기는 마찬가지이다.
8번의 강의를 들었다고 해서 무슨 도깨비 방망이 같은 해법을 얻으리라고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그래서 오늘도 나의 예수는 이렇게 고민만 하고 있는 나를 바라보고 계시지 않을까.
서형석의 예수전
풀집 강좌 중 많이 고민하면서 선택한 강의, “나의 예수전”
미술사를 들을까, 서양 고전사상강좌를 들을까하다가 예수전의 강좌라기보단 김규항선생의 강좌라니까 하는 마음에서 골라본 강의였는데 이제껏 수강했던 외부강좌중에서 가장 열심히 참여한 강의였고 지적인 희열감도 들었던 기회였다고 생각된다.
지난 20여년동안 가톨릭 성당의 세례자로만 이름을 올리고 띄엄띄엄 나가서 기도하고, 봉사단체에 기부하는 정도로만 신앙생활을
한다고 자위하며 생활해온 나에게 성경읽기란 너무나 가까이 하기에 멀기만 하고, 신앙심이 돈독한 사람들에게만 점유된 종교행위라
치부하면서 금기시해왔던 것 같다.
지난 5년간 나에게 도미노처럼 몰려온 개인적 불행, 직장에서의 해고, 집사람의 암 선고와 투병, 사망, 그리고 그 다음 해에
찾아온 태풍 루사로 인한 시골에 계신 부모님의 사망 등 신이 내게 모든 것을 앗아간 엄청난 개인적 고통 앞에서도 성경책 한 자
읽을 마음이 생기지 않았고, 기복신앙적으로만 종교를 대하면서 예수 또한 내가 기대고 의지할 신적 대상으로만 존재매김 했을 뿐,
김규항 선생의 표현대로 성당 안에 박제화된 예수 이상의 의미를 찾지 못했던 것 같다.
신앙행위의 우월성과 기득권을 주장하는 기독교인들에게 성경의 교리에 관한 한 열등감과 자괴감을 충분히 느끼면서도 한편으론 그들이
정의내린 예수가 진정한 예수의 모습은 아닐 수도 있을 거란 마음 한켠의 기대감도 갖고 언젠가는 차분히 성경을 읽으면서 내 나름의
예수상을 정립하겠다란 의지를 갖고는 있었던 것 같다.
김규항선생의 나의 예수전 중 마가(마르코)복음을 읽으면서 성경을 이렇게 읽어야하는구나 하는 성경독법에 대한 방법론도 공감하면서
당시 시대상과 사회상 속에서 예수의 행적과 인간으로서의 예수의 면모를 차분히 확인해보는 수확이 있었던 것 같다.
김규항선생의 강의를 따라 이제 마가복음을 1독해 본 처지에서 나의 예수전을 말한다는 것이 매우 어울리지 않는 일이라 생각되지만
예수의 인민에 대한 애정과 기득권층을 향한 질타 및 불의에 대해 과감하게 대처하는 용기있는 행위를 엿볼 수 있었고, 마지막
십자가에 매달리기까지의 인간적 고통에 대해서는 가슴찡한 연민도 느낄 수 있었다.
예수처럼 제자들에게 혹은 제사장계층에게 치열한 논쟁과 설파, 용기, 불의의 저항 등의 행위는 신성을 지닌 신의 아들로서의 예수가
아닌 인간 예수로서도 오늘날의 우리들에게도 감히 따라갈 수 없는 경외심을 느끼게 하며 아울러 오늘날과 같이 엄청난 物神과 資本의
시대에 과연 예수가 있었더라면 어떻게 했을 것인지, 神만을 경외하며 현실을 긍정하며 사는 것이 과연 현명한 삶의 길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주고 있다.
또한 부활, 영생이란 영원히 시대를 관통해 소통하며 의미를 주는 것이므로 현실의 삶을 처절하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것 자체가
영생에 이르는 길이라 한다면, 현실 속에서 희망없이 살아가는 대다수 인민들에게는 내세의 희망조차도 가질 수 없는 영생론보다는
차라리 내세를 믿고 의지하는 것이 나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번 나의 예수전 수강을 계기로 틈나는 대로 성경책을 읽으며 예수의 진정한 모습을 천착해보면서 영생의 길을 위해 열심히 고민해보려 하며 성경속의 예수독법의 눈을 띠게 해준 김규항선생께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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