를 걱정하며 잠들었는데 다행히 아침에는 비가 내리지 않았다. 집근처 식당에서 밥을 사먹고 경주를 향해 출발. 부산에서 경주까지는 몇 번이나 가본 코스라 지도도 필요 없다. 부산에서 양산을 거쳐 언양을 통해 경주까지 가는 길은 거리가 80km 정도, 오르막도 10분 내외의 짧은 것 두 개 뿐인 평탄한 길이라서 첫날코스로는 제격이다. 비만 안온다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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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양의 초등학교 벤치에 누워서

양산으로 넘어가는 오르막입구에 도착하니 기다렸다는 듯이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작년과 똑같다. 짐에 방수조치-준비해간쓰레기봉투에싸맨다-를 한 뒤 속으로 욕을 해가며 올라가기 시작했다. 내려갈때는 전부 흠뻑 젖어서 질퍽질퍽해졌다. 비는 우리를 따라왔다. 비가 쉬고 조금 날씨가 좋아져서 좀 쉬었다 갈라치면 어김없이 내리기 시작했다. 초등학교에서 밥을 해먹고 나서도 그랬고 짬짬이 쉴 때도 그랬다. 북쪽으로 도망쳤던 우리는 결국 경주에서 비에 따라잡혔다.

 비를 맞고 달려 젖은 날은 찜질방에서 잘 쉬는게 좋다. 경주에 도착하니 시간이 제법 일러서 첫날은 무리하면 안좋음에도 불구하고 -일정이 빠듯하고, 의외로 지용이가 잘 달리고, 비때문에 관광은 포기, 이왕 젖은것 경주에서 포항까지는 얼마 안 되- 하는 이유로 좀 더 달려서 포항에서 묵기로 했다.

 비가 좀 멎었다 싶어서 탈해릉에서 양갱을 먹으며 쉬었다가 출발했다. 그리고 20분 뒤부터는 폭우속에서 옆에 트럭이 한대 지나갈때마다 말 그대로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물을 뒤집어 쓰는 사태가 연이어 발생했다. 이미 길로 나서서 돌아가기도 그런 위치. 낙장불입을 생각하며 내가 수영을 하는건지 자전거를 타는건지 구분하려고 노력했다. 긍정적인 사고를 잃지 않으려고 했다. 시원한것이 찌르는 듯한 땡볕에서 땀을 한말씩 흘리는 것보다 낫지않은가-아마 땡볕이었다면 적어도 비맞는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할것이다.

자전거 여행을 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무섭지 않냐고 물어본다.
무섭다. 차에 치여 내장을 드러낸체 길바닥에 누워있는 생명들을 볼때마다 나도 조금만 실수하면 저렇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펑크가 무섭다. 국도가 무섭다. 짐을 수십톤씩 싣고 질주하는 트럭이 그 풍압에 나를 휘청거리게 하는게 무섭다. 운전자들의 시야를 흐리게 하고 바퀴를 미끄러트리는 비가 무섭다. 60킬로로 달리게 해주지만 돌 하나만 잘못 밟으면 공중부양을 체험하게 해줄 내리막이 무섭다. 집에 있었으면 사고확률도 낮고 편했을 것을. 나는 왜 나섰을까.

뒤에 누군가 따라오고 있다는 생각이 나의 반을 지탱했다. 혼자였다면 절대로 달릴수 없었던 시간들을 지나 포항에 도착했다. 비는 멎어있었다. ㅅㅂ 물어물어 찜질방을 찾고 어디에나 있는 여행자들의 친구 김밥천국에서 저녁을 먹었다. 씻고 빨래를 하고 일기예보를 봤지만 내일 날씨를 걱정하며 힘들게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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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기전에  (0) 2007.08.25

 기상청은 언제나처럼 사상최악의 더위가 올것이라 했지만 장마가 일찍 와서 늦게가고 그 뒤로도 자주 비가 내려서 여름같지 않은 여름이었다. 몽골행을 취소하고 한자공부에 7월 한달을 다 바친 뒤, 슬슬 더워지려는 8월은 도서관에서 이런 저런 책들을 읽으며 지내다 조용히 여름을 넘기겠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떠나고 싶은 마음은 고양이처럼-언제왔는가 눈치채지 못하게 조용히- 다가와 나를 감쌋다. 작년에 가지 못했던 동해안이 아쉬워서일까, 여행간다는 친구에게 같이가자고 연락하고 고양이를 맡아줄 후배를 포섭하고 부족한 장비몇가지를 사고 코스를 정하고 등등 모든준비들을 하루저녁사이에 해치웠다. 남은것은 친구가 부산으로 오는것과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는 것 뿐이었다. 코스는 부산에서 동해안을 따라 올라가서 적당히 내륙을 타고 내려오는 코스. 정말 별 생각없었다. 그저 바람을 맞으며 달릴수만 있다면 즐겁게 달릴수 있다는 좋겠다는 생각말고는.



덧.작년 여행기는 결국 쓰지 못했는데 혹시 기대하셨던 분들께 심심한 사과의 말을 올립니다. 언젠가는 쓰겠습니다. 일단 저번주의 이야기 부터 잊어버리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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