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師說 / 한유韓愈


古之學者 이 必有師하니 師者는  所以傳道授業解惑也라
고지학자 필유사 사자 소이전도수업해혹야 
人이 非生而知之者면 孰能無惑이리오. 惑而不從師면 其爲惑也이 終不解矣리라
인    비생이지지자  숙능무혹        혹이부종사  기위혹야   종불해의 
生乎吾前하여 其聞道也이 固先乎吾면 吾從而師之요 生乎吾後라도 其聞道也이 亦先乎吾면
생호오전     기문도야   고선호오   오종이사지   생호오후     기문도야   역선호오 
吾從而師之니 吾는 師道也라 夫庸知其年之先後 生於吾乎리오   是故로 無貴無賤하며
오종이사지   오   사도야   부용지기년지선후  생어오호      시고   무귀무천 
無長無小 하고 道之所存이 師之所存也니라.
무장무소       도지소존  사지소존야 
嗟乎라 師道之不傳也이 久矣라 欲人之無惑也나 難矣로다 古之聖人은 其出人也이 遠矣로되
차호   사도지부전야    구의   욕인지무혹야  난의      고지성인   기출인야  원의 
猶且從師而問焉이어늘 今之衆人은 其下聖人也이 亦遠矣로되 而恥學於師라 是故로 聖益聖하며
유차종사이문언        금지중인   기하성인야   역원의    이치학어사   시고   성익성
愚益愚이 其皆出於此乎인저.  
우익우   기개출어차호
愛其子하여는 擇師而敎之하고 於其身也엔 則恥師焉하니 惑矣로다  彼童子之師는
애기자       택사이교지     어기신야   즉치사언     혹의      피동자지사
授之書而習其句讀者也니 非吾所謂傳其道解其惑者也라 句讀之不知와 惑之不解에 或師焉하며
수지서이습기구독자야   비오소위전기도해기혹자야    구독지부지  혹지불해    혹사언
或不焉하니 小學而大遺라 吾未見其明也호라
혹불언     소학이대유    오미견기명야
巫醫樂師百工之人은 不恥相師어늘 士大夫之族은 曰 師 曰 弟子 云者면 則群聚而笑之하고
무의낙사백공지인    불치상사     사대부지족   왈 사 왈 제자 운자  즉군취이소지
問之則曰 彼與彼이 年相若也며 道相似也니 位卑則足差요 官盛則近諛라 하니 嗚呼라
문지즉왈 피여피   년상약야   도상사야   위비즉족차   관성즉근유         오호
師道之不復을 可知矣로다 巫醫樂師百工之人을君子不齒어니와 今其智乃反不能及하니
사도지불복   가지의     무의낙사백공지인  군자불치       금기지내반불능급
基可怪也歟인저聖人은 無常師라 孔子師 子 弘 師 老 하시니  子之徒其賢이 不及孔子라
기가괴야여    성인   무상사   공자사담자장홍 사양노담       담자지도기현   불급공자
孔子曰 [三人行에 則必有俄師라]하시니 是故로 弟子 不必不如師요
공자왈  삼인행   즉필유아사         시고   제자 불필불여사
師不必賢於弟子라  聞道 有先後하고 術業이 有專攻이니 如是而已니라
사불필현어제자    문도 유선후     술업   유전공     여시이이
李氏子蟠이  年十七에 好古文하여  六藝經傳을  皆通習之라  不拘於時하고  晴學於余어늘
이씨자반    년십칠   호고문      육예경전    개통습지    불구어시      청학어여
余嘉其能行古道하여  作師說以之하노라
서가기능행고도      작사설이지

 옛날의 배우는 자는 반드시 스승이 있으니, 스승이란 것은 도를 전하고 업을 주고 의혹을 푸는 때문이다. 사람은 나면서 이(도)를 아는 자가 아니면 누가 의혹이 없을 수 있으리오. 의혹이 있으면서 스승을 좇지 않는다면 그 의혹됨이 마침내 풀리지 않을 것이리라. 나의 앞에 (세상에) 나서 그 도를 들음이 진실로 나보다 먼저라면 나는 좇아서 이를 스승으로 삼고, 나의 뒤에 났더라도 그 도를 들음이 또한 나보다 먼저라면 나는 좇아서 이를 스승으로 삼는 것이니, 나는 도를 스승으로 삼는 것이라. 대저 어찌 그 나이가 나보다 먼저거나 뒤에 남을 가리리요. 이런 까닭으로 귀함도 없고 천함도 없으며, 어른도 없고 젊은이도 없고, 도의 있는 곳이 스승의 있는 곳이니라.

 아아, 사도가 전하지 못함이 오래도다. 사람들이 의혹이 없기를 바라나 (이것은) 어렵도다. 옛 성인은 그가 사람에서 뛰어남이 멀건만 오히려 또한 스승을 좇아서 그에게 물었거늘, 지금의 여러 사람들은 그가 성인에서 뒤떨어짐이 또한 멀건만 그러나 스승에게 배우기를 부끄러워하니라.  이런 까닭으로 성인은 더욱 성스러워지고 어리석은 자는 더욱 어리석어지느니, 성인 성인된 까닭과 우인이 우인된 까닭이 그것이 모두 여기서 나온 것이 아니겠는가.

 그 자식을 사랑하려는 스승을 가리어 이를 가르치고 그 몸에 있어서는 어떤 이를 스승으로 삼기를 부끄러워하니, 미혹하도다. 저 동자의 스승은 이에게 글을 가르쳐 주되 그 구두(句讀)를 익히는 것뿐이니, 내가 말하는 바 그 도를 전하고 그 의혹을 풀어 주는 것은 아니니라. 구두를 알지 못하는 것과 의혹을 풀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 혹은 스승을 두기도 하고 혹은 그렇지 않기도 하니, 작은 것은 배우면서 큰 것은 버리는 것이라 나는 그 밝음을 보지 못하겠도다.

 무당, 의사, 악사, 백공의 사람들이 서로 스승으로 삼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거늘, 사대부의 족속은 , '스승이라' '제자니' 운운하면, 곧 무리로 모여서 이를 비웃고, 이(까닭)를 물으면 곧 말하기를, '저와 저는 나이가 서로 같고, 도가 서로 비슷하니, 지위가 낮으면 부끄러함에 족하고, 벼슬이 성하면 아첨에 가까운 것이라' 하니 아아, 사도가 회복되지 못할 것을 (가히) 알 수 있도다. 무당, 의사, 악사, 백공의 사람들을 군자는 상대도 하지 않거늘, 이제 그들의 지혜는 곧 도리어 (능히) (저 사람들에게) 미칠 수 없으니 그것은 (가히 ) 괴이하게 여길 만하지 않은가.

 성인에게는 상사가 없도다. 공자는 담자, 장흥, 사양, 노담을 스승으로 삼으시니, 담자의 무리는 그들의 어짊이 공자에게 미치지 못함이라. 공자 말씀하시되, '세 사람이 가는 데에 곧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고 하시니, 이런 까닭으로 제자는 반드시 스승만 같지 못지 않으며, 스승은 반드시 제자보다 어질지는 아니하다. 도를 듣는 것이 선후가 있고 술업에는 전공이 있으니. 이와 같을 따름이니라.

 이씨의 아들 반이 나이 열 일곱에, 고문을 좋아하여 육예와 경전을 모두 이것을 통습한지라 시속에 구애되지 않고 나에게 배우기를 청해 왔거늘 나는 그가  (능히) 고도를 실천할 수 있음을 가상히 여겨 (이) 사설을 지어서 (써) 그에게 주노라.



한유

중국 당(唐)나라의 문학자 ·사상가.

자 퇴지(退之). 시호 문공(文公). 회주(懷州) 수무현(修武縣:河南省) 출생. 792년 진사에 등과, 지방 절도사의 속관을 거쳐 803년 감찰어사(監察御使)가 되었을 때, 수도(首都)의 장관을 탄핵하였다가 도리어 양산현(陽山縣:廣東省) 현령으로 좌천되었다. 이듬해 소환된 후로는 주로 국자감(國子監)에서 근무하였으며, 817년 오원제(吳元濟)의 반란 평정에 공을 세워 형부시랑(刑部侍郞)이 되었으나, 819년 헌종황제(憲宗皇帝)가 불골(佛骨)을 모신 것을 간하다가 조주(潮州:廣東省) 자사(刺史)로 좌천되었다. 이듬해 헌종 사후에 소환되어 이부시랑(吏部侍郞)까지 올랐다.

문학상의 공적은 첫째, 산문의 문체개혁(文體改革)을 들 수 있다. 종래의 대구(對句)를 중심으로 짓는 병문(騈文)에 반대하고 자유로운 형의 고문(古文)을 친구 유종원(柳宗元) 등과 함께 창도하였다. 고문은 송대 이후 중국 산문문체의 표준이 되었으며, 그의 문장은 그 모범으로 알려졌다. 둘째, 시에 있어 지적인 흥미를 정련(精練)된 표현으로 나타낼 것을 시도, 그 결과 때로는 난해하고 산문적이라는 비난도 받지만 제재(題材)의 확장과 더불어 송대의 시에 끼친 영향은 매우 크다. 사상분야에서는 유가의 사상을 존중하고 도교 ·불교를 배격하였으며, 송대 이후의 도학(道學)의 선구자가 되었다. 작품은 《창려선생집(昌黎先生集)》(40권) 《외집(外集)》(10권) 《유문(遺文)》(1권) 등의 문집에 수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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