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벽세시에 네번째로 깨고 나서 난생 처음으로 119를 불렀다. 주섬주섬 옷을 입고 지갑을 챙기고 냉장고에 기대어 차가 오기를 기다렸다. 119아저씨는 무척 조심스럽고 친절했고 당직의사는 계속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지켜봤다. 간호사는 천사같이 이뻣고 응급실은 무척 편안해서 계속 있고 싶을 정도였다. 새벽다섯시쯤에는 비싼 병원비를 내고 집에 가면서 간호사에게 한번만 더 아프면 굶어죽겠다는 농담까지 할 정도로 회복되었다.

날이 밝아서 늘 가던 병원에 갔다. 할아버지가 하는 외과병원인데 내과도 보고 이것저것 다 한다. 응급실에서 들은 이야기를 하니 새 흡입제를 처방해주었다. 근데 이게 늘 가던 약국에 없어서 택시를 타고 어제 갔던 큰병원근처의 약국으로 가려고 택시를 탓는데 택시기사가 무척이나 유쾌해서 아픈것도 잊을 정도였다. 이야기하다보니(나는 거의 듣기만 했다) 택시기사는 내가 가는 병원이름을 꺼내면서 그 영감 약은 진짜 잘 듣는다고 했다. 반가운 마음에 맞장구쳤다. 큰병원근처의 약국에 갔는데 거기는 알약이 없어서 다시 늘 가던 약국에 가서 알약만 받고 흡입제는 내일 받기로 했다.

사실 그동안 병원다니며 몸 안좋을 때마다 잘 나앗으면서도 이 의사 돌팔이아닌가 하고 약간 의심했었다. 진찰할때마다 왠지 심드렁한 태도에 말도 몇마디 안하고 청진기로 숨소리 두세번 듣고 나서 주사맞고 처방전 받고 끝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새로 처방받은 약은 평가가 좋은 새로 나온약이고(착실히 공부하고 있는건가) 말이 적다고 해도 필요한 말은 다했고 공휴일에도 꼬박꼬박 병원문을 연다. 무엇보다 잘 나으니 이 이상 좋은 병원이 있나.. 오늘부터 믿어 의심치 않기로 했다. 역시 의사는 경험인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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