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석
주석이 인용의 출처를 밝히는 역할만 하는 건 아니다. 때때로 주석은 보다 유명하고 중요한 저서들을 인용함으로써 인용하는 사람이 그 저서의 수준에 있으니, 인용된 저서를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자기가 쓴 글을 읽어볼 생각도 하지 말라는 속내를 드러내는 역할도 한다.
~P.36 주석

메모상자-철학적수집활동을 위한
메모상자는 메모용공책에 대한 대안으로 16세기부터 사용되어옴.
콘라트 게스너

가 메모상자를 고안해낸 사람으로 알려져 있고 "중요하고 쓸모있을 거라 생각되는 모든 것은 한쪽 면만 쓸 수 있는 질좋은 종이에 적어라!"라고 충고. 그때부터 메모상자는 학자들 사이에 널리 애용되었다 함. 수집된 참고자료는 폐품 더미가 아니라 더불어 이야기 나눌수 있는 마법정원과 같으며 수집가는 그 정원에서 더 없이 좋은 시간을 보낼 때가 많다.
대략 몇년 정도 지나면 메모상자가 너무 복잡해져서 수집가 자신도 어디에 무엇이 있는 분간하지 어려워 지지만 창조적인 작업에는 그런 메모상자가 더 잘 어울린다. 분야들을 고정되게 나누지 말고 분류 상자 속에서 온갖 생각과 메모의 네트워크가 점점 크게 자라나도록 하는게 좋다고 노련한 메모상자 이용자는 말한다.

사회학자 니클라스 루만이 권하는 메모상자 이용법은 다음과 같다.

1.A4 용지를 반으로 잘라 메모지로 삼는다.
2. 메모지에 생각나는 것, 흥미로워 보이는 것 혹은 듣거나 읽은 것 중에서 인상적인 것들을 적는다.
3. 한 면에만 쓰도록 하자. 메모상자가 좀더 빨리 차오르기는 하겠지만, 메모지를 상자에서 끄집어 내지 않고, 그대로 넘겨가며 읽을 수 있다.
4.같은 테마에 속하는 메모지끼리 분류하여 한 칸에 모아둔다.
5. 그렇게 만들어진 칸에 해당테마를 떠올릴 수 있는 철자로 표시를 한다.(패러디 항목이라면 'P'라고 쓰면 된다). 그 표시용 철자는 그 칸에 있는 메모지 모두에 똑같이 적어놓는다.
6.그리고 같은 칸에 있는 메모지에 일련번호를 매긴다(이를테면 P4,P5...). 그렇게 하면 어느 메모지든 쉽게 찾아낼 수 있다. 애초 있던 자리에서 꺼내 자리를 옮겨 놓지 않았다면 말이다.
7.각 메모지마다 그와 관계있는 다른 메모지들의 번호를 적어 놓는다. 그렇게 하면 각 메모지들은 제자리에 있으면서도 방향을 지시할 수 있다. 필요할 때 그 메모지를 찾으면 또 다른 방향 지시가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메모지마다 하나의 네트워크를 이루게 된다. 작업을 할 때는 메모상자를 열고 그 네트워크를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8.책에서 발췌한 인용 문구들을 적은 메모지를 관리할 때는 작가이름순으로 정리한 메모상자를 따로 두는 것이 좋다.

메모상자에 꾸준히 먹이를 주다보면 몇 해 지나면서부터는 그 상자에 집어넣지 않았는데도 끄집어낼 수 있는 어떤 생각의 체계가 생겨난다. 관계있는 메모들을 하나하나 따라가며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거의 자동적으로 우연한조합들이 생겨나고 또 재미았는 계열이 생기기도 하는데, 그것들은 새로운 생각을 펼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학생시절부터 메모상자 작업을 시작했던 니클라스 루만은 심지어 메모상자가 자기 자신보다 더 똑똑하다는 말까지 했을 정도자. 그는 메모상자야말고 더불어 말이 통할 수 있는 존재라며, 메모상자 덕에 자신의 수많은 책들이 저절로 씌어지듯 했다고 말한다.

루만의 방법이 너무 번거롭다는 사람에게는 베이컨의 방법이 어울릴지 모르겠다. 이 방법은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이 아니라 그와 이름이 같은 영국의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

에게서 나온것이다.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화가 중 한 명인 베이컨에게도메모상자가있었는데, 이 상자는 여러 구역과 층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메모지가 뭉쳐져 덩어리가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게다가 이 메모상자 안에서 걸어 다닐 수도 있었다. 그랬다. 그 안에서 베이컨이 살았던 것이다. 그 메모상자는 런던에 있는 프랜시스 베이컨의 아틀리에 바닥과 가구들과 사방 벽으로 뻗어갔다.베이컨식 메모상자 구축 방법은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1. 묵은 신문들을 모아 기사나 사진들을 오려내 바닥에 던진다.
2. 책이며 카탈로그를 보다가 재미있는 것이 있으면 찢어 바닥에 던진다.
3. 친구들 사진이나 자기 사진 -엑스레이 사진도 좋다- 를 끄집어내 기름 묻은 손으로 만진 후 바닥에 던진다.
4. 옛날 음반들을 끄집어내 바닥에 던진다.
5. 옛날의 자기 그림들 -원고도 좋다- 을 꺼내 스스로 찢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찢게 하여 바닥에 던진다.
6. 헌 옷가지며 신발들을 바닥에 던진다
7. 여기저기 기름이나 맥주를 부어 낱장들이 서로 달라붙어 덩어리가 되게 한다.

몇 해 정도 꾸준히 이 방법을 쓰다보면 상당한 양의 무더기가 만들어 진다. 질 좋은 포도주처럼 메모상자 역시 발효되고 숙성되어야만 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섞어주고 경우에 따라서는 솎아내기도 해야 한다. 무더기처럼 보이는 저런 메모상자를 가지고 도대체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 의아해 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모든게 뭉쳐진 덩어리 속에서 메모며 그림들을 어떻게 도로 끄집어 낼 수있단말인가?
물론 여기서어떤 특정한 것을 염두에 두고 찾는다면 그건 바보 같은 짓이다. 그러나 어떤 걸 찾아낼 수는 있다. 그것도 메모지와 온갖 종이 그리고 그림들이 뒤섞인 난장판 속을 어슬렁 거리다가 말이다. 그러는 가운데 자동적으로 기존의 질서가 흐트러지고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진다. 그러고 난 다음 바닥에 새로 생겨난 별자리들을 살펴보며 거기서 새로운 영감을 얻고 개별 조각들을 끄집어내어 가다듬고는 다른 자리에 도로 내던진다. 후략.
~챕터9 수집

옌스 죈트겐 지음;도복선 옮김,생각발전소, (북로드,2005)

-제목그대로 생각을 발전시키는 방법들을 알려주는 책이다. 부제는 철학자에게 배우는 논리의 모든것. 원제는 selbstdenken스스로 생각하라. 원래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책이라 그런가 어렵지 않고, 유머가 있는 적절한 예시를 통해 철학적 사유를 설명한다. 단순한선으로 철학자들의 특징을 뽑은 일러스트도 마음에 든다. 좋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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